[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민이 모이면?

  • 입력 2017.08.19 18:51
  • 수정 2017.08.19 19:17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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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한여름 무더위를 나무그늘 아래서 부채로 쫓아버리기에는 그 시간이 아까우리만치 농민의 시간은 짧고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너무 더울 때는 차라리 농사일 대신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지요.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면 ‘농민 한마당’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곳, 여러 단위에서 대규모 행사를 펼칩니다.

그 중에서 눈여겨 볼 것은 단연코 ‘여성농민 한마당’입니다. 조용하다 못해 심심하기까지 한 농촌마을에 한마당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리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 행사를 알릴라 치면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탭니다. ‘내, 다른 데는 안 가도 거기는 꼭 갈 끼다. 내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갈 끼다!’라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십니다.

물론 행사마감 직전에 경품 추첨행사가 있고 참석자 전원에게 주는 몇 천 원 짜리 기념품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야 어디를 가든 기본이 되는 조건이고, 어찌 보면 경품수준이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나 싶은데도 불구하고 한 번 참석해본 분들은 어쩐지 또 참여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행사를 준비한 주최 측 앞에서만 말하는 공치사는 아닙니다. 때가 되면 행사를 언제 하냐고 물으시는 분도 계시니까요.

별 것 있겠습니까? 존중받는 느낌이겠지요. 그것이 제일 으뜸일 것입니다. 평생을 농사짓고 살아온 당신이여, 오늘만큼은 충분히 즐기시라, 당신은 충분히 그런 대접 받으실만 한 분이고 지금도 당신이 짓는 농사로 세상 사람들이 먹고 살고 있으니 이보다 더 존귀할 수 있겠는가?

오늘 행사에 참석하는 모든 내 외빈들도 그런 당신들을 향해 머리 숙이며 진정어린 감사의 인사를 하는 날, 잘난 사람에게 눈치 볼 일도 잘 보일 일도 없이 오롯이 우리들만의 시간이다, 먹을 것, 나눌 것들 조금 준비했으니 먹고 즐기며 세상을 향해 우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해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들의 자존감도 조금은 웃자라고 까닭모를 웃음이 연발하는 것이겠지요. 그 느낌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표정과 어깨춤에 그 느낌이 담기는 것이고, 다음에도 참가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대부분의 모든 관변행사에 참여해볼라치면 여성농민이 주최가 되는 행사임에도 어쩐 지 머쓱해질 때가 많습니다. 입으로는 농사짓는 당신이 최고라고 말하지만 그들의(관변, 공적인 질서) 문화에 맞추라고 이야기 합니다. 질서정연함과 규모와 품격이 밥을 먹여 주는 것처럼 의전을 중하게 여기다보니 어쩐지 남의 옷을 입은 듯 불편하기가 십상이지요.

그래서 조금은 위축되기도 합니다. 노래자랑에 나가더라도 몸놀림에 박자 맞추는 수준의 조심스러움이 담기고 교양이 내비쳐지는 소극적인 무대가 됩니다.

하지만 ‘여성농민 한마당’에서의 자세는 달라집니다. 춤사위가 어깨를 흔드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끼를 최대한 발산하며 온 몸의 모든 근육을 움직여서 흥을 돋웁니다. 그 기세에 관객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호응을 하게 되지요.

진행자의 복잡한 요구에 예행연습이 없음에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행사가 흐트러짐 없습니다. 참여한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서 비협조적이고 무질서할 것 같은 데도 말입니다. 짜임새 있는 판에 여성농민의 소중함을 내용으로 채워서 일사분란하게 행사를 진행하는데 손님과 주인이 따로 없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성농민 한마당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 되는 셈이지요. 유심히 본 사람들만이 아는 수준급 행사입니다. 마음이 모이지 않고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최고의 작품입니다. 여성농민 여러분, 더는 나이 드시지 마세요. 아프지도 마세요. 당신들이 안 계시는 이 땅의 농업은 누가 이어 갈 것이며 내년 한마당 자리는 누가 빛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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