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통합RPC로 크게 키워서 경쟁력을 갖추고, 농산물 제값을 받아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농민에겐 저가수매를 하고 소비자에 기존과 같이 파는 게 통합RPC의 방침이었다. 사고를 내지 않아도 농민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달 5일 전북 정읍시농협조합공동사업법인(정읍시농협조공법인) 통합RPC에서 열린 집회에서 나온 윤택근씨의 목소리다. 이날 집회는 정읍시농협조공법인이 쌀 외상판매를 하다 담보의 8배가 넘는 50억원에 가까운 손실을 보게 된 사고에 따른 것이다.
윤씨는 이날 “통합RPC가 예전에 벼값 결정 이사회를 한다고 해서 참관이라도 하려고 했으나 관련이 없으니 나가라고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하겠다고 버텼더니 업무방해로 고발을 해서 결국 벌금을 물었다”며 “남의 영업장을 점거한 채 집회를 하는 것이므로 신고할 경우 다 벌금을 물 수도 있다”는 뼈 있는 농담으로 조공법인의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농민과 그렇게 무관하다고 강조하면서 왜 농민에게 지원해야 할 정책자금은 지원 받나”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또한 “사고가 터져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조합장이 없다. 책임은 직원에 불과한 통합RPC 장장에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한다”고 지탄했다. 결국 “통합RPC는 지금 당장 해체해야 한다”는 그의 단언에 농민들 사이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정읍시농협조공법인 사건은 잊을만하면 터지는 조공법인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14년 농협법 개정을 통해 정부가 도입한 조공법인 제도는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는 비판부터 유통구조 변화에 따른 전략적 선택이라는 평가까지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적자경영, 비민주적 운영, 비리사고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제도개선 등의 수술이 필요하다는 데 농업계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흑자를 내는 조공법인도 있는 만큼 무조건 폐지할 게 아니라 기존 농업계가 요구해온 품목별연합회로 방향을 명확히 하고, 이에 발맞춰 연착륙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이날 정읍시농협조공법인을 찾은 농민들은 “주인없는 방앗간의 주인은 바로 농민조합원”이라며 “농민조합원이 주인돼 통합RPC 개혁하자”고 목청을 높였다. ‘규모화, 전문화, 효율화’를 명분으로 정부 주도 아래 졸속적으로 추진된 조공법인 제도. 바로잡기에는 너무 멀리 왔지만 지금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결국 모든 피해는 농민조합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