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토종종자 보전’ 외길인생

장흥 ‘남도 토종종자 나눔회’ 대표 이영동씨
40년간 150여종 토종종자 모아 보관·전파

  • 입력 2017.08.13 07:10
  • 수정 2017.08.13 07:1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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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재배한 토종 농산물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40년간 전남 각지의 토종종자를 모아 왔다.”

전남 장흥군 용산면의 농민 이영동(65)씨는 ‘남도 토종종자 나눔회’의 대표이다. 40년 간 전남 지역을 돌며 토종종자를 모으고자 애쓴 결과, 현재까지 약 150여 종의 토종종자를 모아 보관 중이다. 2005년엔 지역 농민들과 ‘남도 토종종자 나눔회’를 결성했다.

용산면 너른 들판 구석에 자리잡은 이씨의 집은 ‘토종종자 박물관’이었다. 농가의 안방에 들어가니, 종자들을 채운 유리병이 한쪽 벽에 그득했고, 서랍에도 각양각색의 종자들이 있었다.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씨의 젊은 시절 아픈 경험이 주된 계기였다. “20대 때 한동안 객지 생활을 하던 중 어머니를 여의었다. 어머니께선 생전에 종자를 아껴 쥐가 못 먹게 여러 옹기그릇에 담아놓으셨는데, 모친상을 치르고 뚜껑을 열어보니 (씨앗이) 다 좀 먹어버려 못 쓰게 된 상태였다. 그토록 어머니께서 아끼던 씨앗들이었는데… 그 씨앗을 한 줌 쥐고 한나절을 울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를 생각하며 종자를 모으고자 전남 곳곳을 돌아다녔다.”

고생도 많았다. 야심한 밤에 산을 다닌다고 경찰이 간첩으로 오인했고, 친구들로부터 “다 큰 놈이 씨앗이나 모으고 다닌다”며 무시당하기도 일쑤였다. 그럼에도 이씨는 전남 각지를 돌며 150여종의 종자를 모았다.

전남 장흥군의 농민 이영동씨가 지난 40년간 모아온 토종종자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가운데 쌓인 유리병에 각종 콩, 벼 등의 종자들이 담겨 있다.

왜 전남 지역에서만 토종종자를 모았냐는 질문에 이씨는 “각 지역에선 그 지역 풍토에 맞는 종자를 재배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경북 봉화에서 한 농민이 종자를 받아가 봉화에 심은 적이 있는데, 잘 안 자랐다. 경북 북부와 전남의 풍토가 다르기 때문”이라 답했다.

이씨는 직접 재배한 참외를 대접했는데, 일반적인 샛노란 참외와 달리 껍질 색이 초록색이었다. 알맹이는 일반 참외와 비교할 때 좀 더 달고 싱싱했다. 토종 참외인 조선참외였다. 조선참외 외에도 개똥참외, 쇠뿔참외, 개구리참외 등의 온갖 참외종자가 있었다.

이씨의 보유 종자 중엔 특히 벼와 콩의 종자들이 많았다. 그 중 아주까리밤콩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보성의 시장에서 뻥튀기 장사하던 할머니가 흘린 밤콩을 주웠다가 도둑으로 오인받았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구한 그 밤콩은, 이젠 나눔회 회원들에게도 전파해 많은 농가가 재배 중이다. 이씨는 “이 아주까리밤콩을 튀겨 먹으면 매우 고소하다. 토종종자는 개량종자보다 훨씬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잘 맞는다”고 말했다.

나눔회엔 현재 18개 농가가 참여 중이다. 이씨와 함께 활동 중인 허인숙씨는 “이(영동) 선생님으로부터 남도장콩을 받아 전통 방식으로 장을 담근 것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전국에서 100가지 콩을 모은 뒤 채종포를 만들어 보존 중”이라 했다. 허씨는 토종종자를 더욱 전파하려면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단 생각에, 음식 개발 및 발효 연구에 몰두 중이다.

이씨는 “토종종자를 잘 재배하기 위해선 윤작과 섞어심기 등을 통해 다양한 토종작물이 공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단작은 땅의 지력과 재배하는 작물의 양분도 약화시킨다”며 “조선시대 조상들은 다양한 벼의 재배를 통해 1,451종의 토종 벼 종자를 양성해냈다. 우리도 조상들의 지혜를 본받아 토종종자 보존과 재배에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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