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사업, 그게 그거 아니냐?

  • 입력 2017.08.11 12:38
  • 수정 2017.08.11 12:58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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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사업이 별거 있나? 그게 그거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저는 두 가지의 예를 들어서 농협 사업이 ‘별거 없다’, ‘그게 그거다’라는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인터넷이 은행을 개설?

얼마 전에 카카오뱅크라는 인터넷 은행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카카오뱅크 이전에 케이뱅크라는 인터넷 은행이 있었습니다. 먼저 개설한 케이뱅크에 비해 독자적인 인터넷 구축이 잘 돼 있던 카카오뱅크는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카카오는 인터넷을 이용해 소통의 편의성을 제공하는 수단을 넘어 택시회사를 운영하고 은행까지 설립을 했습니다. 카카오뱅크는 설립 이후 폭발적으로 고객이 증가하고 예금과 대출, 수수료에서 기존 은행이 걷어가던 방식에 파격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카카오뱅크는 (농업)정책자금을 취급하지 않고, 담보 대출을 시행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고객의 편의성, 이용하는 고객의 비용부담은 기존의 여러 은행들보다 현저히 나은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담보대출, (농업)정책자금 이용에 대한 부분을 제외하면 농협을 포함한 기존 금융권들의 상호금융 사업들은 인터넷 은행에 경쟁력을 현저히 잃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인터넷 은행들의 영향권에서 시골 농협들은 고령화된 고객의 덕분으로 당분간 버티겠지만 앞으로의 흐름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인터넷 은행들은 금융점포도 없습니다. 당연히 은행의 직원들을 만날 일도 없지만 보통의 시민들이 은행을 이용해야하는 부분에서는 더 편하다고도 합니다. 이런 은행 사업의 서비스는 더 진행될 것이 확실합니다. 급격한 변화입니다.

인터넷 은행인 카카오뱅크의 돌풍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농산물 판매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금융과 경제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농협이 살아남으려면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업무에 반영해야 한다. 카카오뱅크 누리집•페이스북 갈무리

스무 시간 만에 집에 도착하는 농산물

올해 호박을 수확해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에서 첫 광고를 냈더니 상당한 판매들이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광고를 보시고 어떤 분들은 직접 농가창고로 구매를 하러 오기도 합니다.

농협의 로컬매장에도 일부 출하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인터넷 판매가 총 판매량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농협 집하장으로 농산물이 나가지 않고, 공판장으로 가서 경매 절차도 거치지 않고, 판매센터 같은 곳에 진열되지 않고 우리집 선별장에서 소비자에게 바로 가고 있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경운기에 실어서 공판장으로 가던 저의 초년 농사꾼 시절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 제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상당 부분에서 버벅거리고 있지만 제가 택배로 배송을 하면 소비자의 구매처에는 불과 스무 시간 후에 도착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 방식의 유통이 가속화 될 거라고 믿습니다.

전화기가 지금은 은행거래를 바꾸고 농산물 거래를 바꾸고 있습니다. 은행거래는 급속히 바뀌고 있으며 은행거래보다 수수료율이 훨씬 높은 농산물 거래가 혁신적으로 바뀔 것은 확실합니다. 이 변화는 당연한 것입니다. 금융도 하고, 농산물·농자재 판매도 하는 농협은 앞으로 어떻게 변하게 될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인터넷 은행인 카카오뱅크의 돌풍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농산물 판매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금융과 경제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농협이 살아남으려면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업무에 반영해야 한다. 카카오뱅크 누리집•페이스북 갈무리

카카오와 페이스북

농사로 먹고 사는 저 같은 농민에게 카카오와 페이스북이라는 인터넷 공간은 아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이었습니다. 단순하게 여유 시간에 아는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시간을 내서 뉴스를 보는 게 아니라 시간이 나면 세상 소식을 듣는 공간으로 생각하고 이용했는데 이제 이 공간이 제게 매우 생산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의 소시민들이 금융에서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골농협 조합장까지 한 저로서는 체면상 금융 거래에서 이익이 있다고 인터넷 은행으로 갈아타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농산물 유통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 은행의 고객들이 생기는 것과 페이스북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은 이제 오십의 중반에 접어드는 저 같은 농민에게는 아주 큰 변화입니다. 이 변화에 현장의 농협도 분주해지고 있는 느낌이지만 겨우 갓다리들을 건드리고 있는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서 거기’가 아닌

주변의 금융, 유통시장이 변하고 있을 때 농협의 상당부분은 정체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이용고객인 다수의 농민들이 부담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대출금 이자, 이용카드의 혜택 축소, 보험-공제상품의 몰이해, 높은 수수료 부담 등이 있습니다.

농촌에서 농민들의 대출금 이자 부담은 심각할 정도였고 연간으로 환산하면 지금도 상대적으로 농민들이 1,000억 이상의 이자를 더 부담하고 있을 것으로 봅니다. 농협 사업은 ‘거기서 거기’가 아닌 엄청난 변화가 필요한 사업임에도 상당한 부분들이 정체돼 있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농민과 이용자에게 떠맡기고 있는 것입니다.

농협조직 전체로는 옥상옥 구조의 농협의 중앙조직들이 존속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고, 현장은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상임임원들이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야하니 조합원들의 이기적인 측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상당한 경영부담을 숨기고 있는 것이 문제로 보입니다.

농협금융, 변하지 않으면 (할 수 없이) 망한다

조합장을 하면서도 농협의 사업이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들이 주변에 만연해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오랫동안 농협에 있었던 사람들은 관성에 젖어 농협의 사업은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농협을 좀 안다는 이용조합원 중에서도 상당수가 농협 사업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저는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협은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하고, 카드사업, 보험사업을 하지만 이를 하지 않는 농협도 있습니다. 농협의 예금, 대출, 카드, 보험 같은 금융 사업은 앞으로 존재가 가능할 지 예측하기 힘듭니다. 있기야 있겠지만 실제로 있을지는 예측 자체가 안 됩니다.

이미 농협의 지금 방식의 금융은 종착지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정밀하게 (금융)상품들을 비교하지 않고 대면 거래를 신뢰하는 소박한 농민들의 특징에 기대어 농촌 금융들이 일정정도 버텼는지는 모르지만 곧 심각한 위기가 올 거라는 겁니다.

지금의 농협은행은 정리돼야 합니다. 지역농협들의 상호금융사업도 구조조정을 해야 합니다. 그 구조조정의 결과가 긍정만 생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구조조정은 해야 합니다. 지금 상태면 지역농협들의 상호금융은 이용조합원들에게 부담만 지속시키다가 소멸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미 인터넷 은행에 비하면 예금이자와 대출이자는 경쟁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첩이 변화를 막고

대부분의 농협이 농산물을 판매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판매하지는 않고, 대부분의 농협들이 농자재를 판매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혀 판매하지 않는 농협도 있습니다. 실제로 다양한 사업을 농협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용하는 고객(조합원)에게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데 제가 보기에는 조합원들과 농협의 관리자들이 농협의 사업을 ‘거기서 거기’가 된 결과들을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협에서 계통으로 들어온 농자재가 소비자 손에는 어떻게 도착하는지 깊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서류상 절차의 진행방식은 먼저 생산자가 생산원가에 이익을 붙여 농협의 중앙조직으로 넘기고, 중앙조직의 비율로는 아주 낮지만 총액으로는 결코 적지 않은 수수료를 약간 붙여서 지역농협으로 넘기고 지역농협은 자체적으로 정하는 규정에 의해서 수수료를 붙여서 농민에게 넘깁니다.

실제의 농자재는 공장에서 지역농협으로 바로 가서 소비가 이뤄지지만 서류상의 절차는 그렇게 진행되면서 곳곳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최종 부담자는 농민이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농협 상황은 그러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는 소비자(농민)가 인터넷 시장에서 농자재를 비교하여 선택하면 판매장 없이 생산공장에서 소비자에게 바로 직송되도록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농협을 오리에 비유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날고, 달리고, 헤엄치기를 하는 오리이지만 어느 것 하나도 뛰어나지는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오리는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헤엄을 치지만 물고기에 비해 아주 뒤쳐지고, 달리기를 하지만 초식동물에 비교될 정도로 뒤쳐지고 하늘을 날지만 그리 날렵하지 못한 오리가 하늘과 땅, 물 위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농협을 거기에 비유해 금융은 은행에 뒤쳐지고, 농자재 유통은 일반 농자재상들에 비해 기동력이 떨어지고, 농산물 판매는 농산물 판매를 하는 중매인들보다 뒤쳐져도 지금까지 버텨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으로 보입니다. 법으로 보장 받고 있으며 한계가 없는 농협 사업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된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불필요한 중복과 절차는 당연히 생략돼야 하고 금융에서는 불가피한 대면 고객과 비대면 인터넷 고객들을 빨리 가려내 사업을 준비하고, 못했으면 지금이라도 진행해서 농민고객에게 금융부담을 줄여주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농산물은 직거래 거점을 조속히 틀어쥐어야 하지만 엊그제 둘러본 현장은 여전히 갑갑합니다.

농협이 보조금으로 버티고, 특별법으로 버티고 있으면서 비용부담을 이용고객들에게 알게 모르게 전가시키고 있다면 농협중앙회 관련조직이나 지역농협 조직들은 변화를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거나 저거나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변화를 거부하는 소수는 대개 그 위치가 기득(旣得)한 사람들이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변화가 싫습니다. 농협을 직장으로 보면서 정년에 도달하고 있으며 권한은 상당하면서도 움직여 일할 생각은 하지 않는 상당한 농협의 구성원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구조물이 있어야 영업이 된다고 생각하며,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는 사무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농산물의 유통을 위해서는 집하장과 공판장, 판매센터를 더욱 확장해야 한다는 낡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농협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면 심각합니다. 지금의 흐름이 어디로 갈 지는 저도 모르지만 숱한 경우의 수를 두고 농협은 농민조합원들을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김순재의 농협 빗장풀기’를 매월 1회 연재합니다.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을 역임했던 김 전 조합장이 들려주는, 늘 곁에 있으나 잘 알지 못했던 농협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볼까요.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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