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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아직도 멀기만 한 세상

“요즘처럼 더운 날에는 새벽 일찍 눈 뜨자마자 밭으로 달려간다. 그래야 한낮 불볕더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 할 때는 남자, 여자가 따로 없다. 남자든 여자든 각자 자기가 해야 할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 그래야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나 집에만 들어오면 달라진다. 남자는 씻고, 여자가 차려 놓은 늦은 아침을 먹는다. 그러나 여자는 땀에 절은 몸에 대충 물 한바가지 끼얹고는 헐레벌떡 부엌으로 들어가 급하게 아침상을 차린다.”

이런 내용의 글은 본 적이 있는가? 30년 전 책으로 본 것인데 3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이 이야기를 책으로 쓸 판이다. 똑같다.

세상은 언제나 변할까?

남성과 여성의 불평등한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곳이 농촌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가장 더딘 곳이 농촌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껏 그 공동체에서, 그 문화 속에서 살아왔으니 모서리가 닳고 닳아 무디어졌건만 최근 새삼 슬프기도 하고 씁쓸한 일이 생겼다.

내가 사는 이 곳 상주는 요즘 남들이 다 하는 로컬푸드운동으로 뜨겁다. 이미 많은 지역에서 시민, 농민단체들이 또는 지자체가 앞장서서 로컬푸드를 통해서 지역 소농들을 살리고 안전한 먹거리를 시민들에게 공급하며 이를 통해 지역을 바꾸는 실험들을 하고 있다.

우리 상주도 늦었지만 생산자협동조합을 만들어 농민들이 주도하는 로컬푸드운동을 시작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여성농민회도 중심적인 단체로써 적극 참여하고 있다. 본래 소량다품종 생산체계를 기본으로 하는 로컬푸드운동은 남성농민들보다 여성농민들이 더 잘 할 수 있으며 참여도나 기여도 등에 있어서 훨씬 적극적이다. 그래서 로컬푸드운동하는 리더들은 “여성농민들을 어떻게 조직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달려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미 하고 있는 대부분의 조직들을 보면 어떤 일을 결정 하는 의사결정 구조에는 여성들의 참여도가 높지 않다. 정부, 지자체, 농협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래서 상주로컬푸드협동조합에서는 정관에 임원을 선출하는데 있어 「남성과 여성 중 한 성이 전체 이사의 2/3를 넘지 않도록 한다.」 라는 문구를 명시했다. 그 문구는 정관을 준비하던 남성농민이 제안했고 다른 참여자들도 동의해 줘서 무리없이 통과 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이사 6명 중 2명이 여성, 감사 2인 중 1인이 여성으로 선출됐다.

그런데 1/3을 지켰다는 것에 기뻐야 할 텐데 끝나고 나니 오히려 슬프고 씁씁했다. 우리 여성들은 언제까지 이런 할당제라도 있는 것에 기뻐해야 할까? 언제까지 이렇게라도 우리의 존재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걸까? 로컬푸드운동이든 농민운동이든 우리가 하는 운동이 결국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향한 것 일 텐데 그 길 속에 남성과 여성이 평등한 세상은 왜 아직도 합의가 필요한 것일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제는 여자들 세상이야”라는 술자리에서 허접한 농담이 오가는 것이 변했을 뿐 아직도 마을에서 지역에서, 모임에서 조직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 평등한 관계는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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