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여성농민, 가장 기름진 땅입니다

  • 입력 2017.08.04 15:43
  • 수정 2017.08.06 19:41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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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경남 남해)

일 년 중 가장 무더운 이때, 사람들이 무더위를 피해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떠나는 이 즈음에 고추가 가장 잘 익는 때입니다. 그러니 농민들은 한낮의 무더위만 피하고서 아침저녁으로 고추를 따서 말립니다. 힘든 것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첫물 고추들이 탐스럽게 익어 가면 언제 쯤 딸지 시기를 맞추는 일이며 누구네 집은 얼마를 땄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처음 고추농사를 맛들일 때는 가지가 하나 부러져도 애가 타고, 벌레를 먹은 고추도 아깝더니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예사로 보입니다. 고추교육에 가서 들은 얘기로는 노지 고추 1포기에 3,000개의 고추꽃이 핀다하고 그 꽃들 중 실제 우리가 수확하는 고추는 채 300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한 포기에 300개도 많을 상 싶습니다. 고작 100여개 남짓을 따는 것인데, 이게 묘한 함수가 있습니다. 꽃을 많이 피웠다고 해서, 고추열매를 많이 매달았다 해서 그것이 모두 충실한 고추열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 몸이 감당할 수 있는 고추를 달고, 그것도 때가 지나면 고추열매가 작아져버리는 것이니 농민들의 욕심만큼 수확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서 한 해 고추농사를 총 정리 해보면 유인을 잘 하거나 영양제를 주는 등의 기본 관리를 잘 해도 수확이 제일 많은 곳은 결국 토질이 제일 좋은 곳입니다. 남들은 몰라도 농민들은 자신의 땅 중에서 어느 곳이 기름지고 어느 곳이 척박한 지를 잘 압니다. 그러니 그 지력으로 키워낼 수 있는 고추의 양은 어찌 보면 정해져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3,000개의 고추 꽃 중에서 튼실한 고추를 키워낼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면야 고추가지가 하나 부러지고 벌레 먹는 고추 몇 개 있다고 애달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몇 년의 고추농사에서 배운 셈이지요. 그래서 고수 농민들은 농사의 기본이 땅에 있다고 하며 땅을 잘 만들 것을 강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삶에 있어서도 기본이 되는 것이 여럿 있겠지요. 그 중에서도 잘 먹고 잘 살되 나 혼자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의 누군가도 살피며 더불어 잘 사는 것이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일 텐데 자신의 명성, 자신의 부, 또는 내 테두리 안쪽만을 챙기는 것이 중요한 세상이 되어서는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해서 눈감기가 일쑤입니다.

그런 세상의 시류에도 주변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사정과 남의 사정을 비교해가며 남의 사정을 안타까이 여길 수 있는 성질 말입니다. 물론 사람의 고유한 성질이사 타고날 때부터 저마다 다르므로 두말할 것도 없지만, 같은 일을 죽 해오다 보면 그 일에서 오는 특유의 성질을 닮게 되는 것이고, 자세히 보면 그 직업군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들이 있습니다.

시인의 감성과 학자의 분석력과 검찰의 예리함, 선생의 가르침 그 모든 것이 직업군으로 대표되는 성질이겠지요. 그런 가운데서 남의 이목을 살피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일을 감당해 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여성농민 아닐까요?

애시 당초부터 권력이 주어지지 않았으니 권력의 맛도 모르겠거니와 권력에 접근하지 못한 체로다가 세상에서 부여된 자신의 노동을 기꺼이 감당하며 이 여름 뙤약볕에서 고추를 딴다, 깨를 찐다 그 노고를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폭염 속에서 삼계탕을 끓여내고 추어탕을 고으며 가족들이 입맛과 체력을 잃지 않도록 살핍니다.

주변의 조건과 상관없이 가족을 돌보고 농사일(생명돌봄)을 하면서 자신의 요구보다 상대의 요구에 자신을 맞추는 이 고귀함이라니 눈물겹지 않습니까? 게다가 내 처지와 남의 처지가 다르지 않으므로 쉽게 남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여성농민들은 책임감이 강하고 진정으로 연대할 줄 압니다. 이렇게 삶의 가장 기본을 제대로 터득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 여성농민은 고추밭으로 치자면 세상의 가장 기름진 토양인 셈이고 그 힘이 또 세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이 폭염에도 세상을 먹여 살리므로 말입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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