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성주를 향한 조롱을 보며

  • 입력 2017.08.04 13:46
  • 수정 2017.08.04 14:06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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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정부의 탄생 이후 사드 배치 관련 여론에서 생긴 커다란 변화가 있다. 사드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지금은 내보내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성주 소성리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때마다 연일 이어지는 ‘성주는 홍준표 찍어놓고 사드 반대가 말이나 되냐’, ‘표는 자유당에 주고 원하는 건 문 대통령에게 바라냐’ 등의 비난과 조롱이 그것이다.

근거는 단 하나, 사드 찬성 입장을 보인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후보의 성주군 득표율이 56.2%로 나타났다는 대선 결과다. 그러나 사드 배치에 항거하는 이들이 성주군수와 중심부 거주자들로부터 외면당한 소성리 중심의 소수자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배치 부지가 읍에서 불과 1.8km 떨어진 공군 성산포대로 알려졌던 초기, 성주군민들은 그야말로 하나가 된 듯 싸웠다. ‘성주 전체가 마비됐다’고 할 정도였다. 박근혜정부와 국방부는 보수의 텃밭에서 빗발치는 항의에 놀라면서도 배치 강행을 위해 ‘제3부지’라고 알려진 변두리의 초전면 소성리를 들먹였고, 애석하게도 많은 성주 사람들이 소성리를 지키기보단 그들을 희생해 성주읍을 살리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여론은 사분오열됐고 함께 반대의 목소리를 내던 군수와 그 지지자들은 꿀을 먹었는지 갑자기 입을 닫았다(마침 지난 2일, ‘시사인’에서 당시 청와대가 성주 여론 형성에 개입했던 흔적을 찾았다). 잘 보이지 않는 저 먼 산에 설치될 사드는 이제 성주읍 사람들에겐 ‘남의 일’이 됐다.

배치 부지로 선정된 것은 불운이었지만, 그 중요하다는 사드가 실질적으로 우리 안보에 전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상황을 타개할 기회였다. 성주와 소성리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에 놓아도 사드는 백해무익하다는 당위성 아래 4만5,000명 성주군민이 합심하여 목소리를 냈다면, 지금쯤 성주는 “소성리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외치는 할매들을 지켜낸 촛불혁명의 또 다른 성지가 됐을지도 모른다.

대선 이후 벌써 3개월이 흐르고 있지만 기성언론은 그들의 기사에 동반되는 틀어진 여론을 바로잡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이미 사드에 관심이 없던 성주 사회가 누구를 찍었느냐가 아니라, 지역이기주의에 빠져 같은 성주 사람들을 버린 소시민들에게 죄를 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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