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농활] 울력으로 보수의 벽 허무는 봉화군농민회

  • 입력 2017.08.04 13:34
  • 수정 2017.08.04 13:37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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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이번 농활은 사과로 유명한 경북 봉화다. 정영기(56) 봉화군농민회 감사가 올해 초부터 몸이 안 좋아져 회원들이 모여 정 감사의 사과밭 4,000평 풀베기 작업을 할 예정이라는 소식에 한 손이라도 더 보태고 싶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1일 새벽, 집결시간인 6시를 맞추려면 세수는 사치다. 손에 잡히는 대로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서는데 잠결에 깬 아내가 안전운전을 신신당부한다. 먼동이 터올 무렵 도착한 정 감사의 사과밭에서 기자를 맞이한 건 장대비. 우비를 입은 농민회원들이 하나둘 예초기를 들고 사과나무 아래 어른 허리 만큼 자란 풀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서둘러 정 감사에 인사를 건네고 농활을 왔다고 하니 “예초기는 써봤냐”는 미심쩍은 질문이 돌아왔다. 주변에서 예초기 작업은 자주보지만 생각보다 위험하고 부상사례도 많아서일 터. 사실 예초기를 직접 돌려본 적이 없다. 군대에서도 기회가 없었다. 잠시 뜸을 들이니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 보고 취재나 하라”는 령이 떨어졌다. 농활을 위해 3시간을 달려왔는데 먼발치에서 구경만하다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 입에선 선의의 거짓말이 나온다. “벌초 때 써봤죠.”

해마다 전남 목포 앞바다의 섬으로 벌초를 가면 예초기는 사촌형님들의 몫이었다. 멀리서 온 사촌동생을 챙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위험해서인지 정 감사는 “진짜 써봤냐”고 재확인을 했지만, “해 보겠다”는 단호한 의지에 결국 예초기를 두 어깨에 메고 사과밭으로 향할 수 있었다. 비가 오는데다 웅웅거리는 예초기 소리에 작업 요령을 자세히 물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곁눈질로 주변 회원들의 동태를 살피며 작업에 돌입했다.

처음엔 시원하게 잘려져 나가는 풀들을 보면서 사과가 제대로 영글겠다는 생각에 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돼가니 팔은 이미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 사과나무 가지가 늘어져 있는 곳은 허리를 깊이 숙인 채 예초기를 돌려야 하니 허리통증은 덤이다. 게다가 시원한 장대비는 땅을 적시는 것으론 모자랐는지 결국 속옷까지 적셨다.

이날 작업엔 무려 15명이 넘는 많은 회원이 몰리며 생각보다 일찍 작업이 종료됐다. 정 감사는 “이렇게 많이 모이니 내가 귀농해서 못살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아주 좋다”며 “지금 큰 병을 얻어 있지만, 오늘 힘을 많이 받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기고 용기백배됐다”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후 아침식사 자리에 둘러앉은 회원들은 지역의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한 이런저런 얘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해 봉화군농민회는 박근혜 퇴진 투쟁에서 서울사람들이 봉화군농민회 깃발을 가장 많이 봤다고 했을 정도로 열성이었다. 회원들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됐다는 게 김태수 봉화군농민회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김 사무국장은 “회원들이 서로 도와가며 세상을 바꾸기 위한 토대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보수적 색체가 짙은 지역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내년 지방선거 등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봉화군농민회의 울력이 만들어 낼 변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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