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농산물 유통의 칼자루를 쥐다

[기획연재] 도매시장의 새 패러다임, 시장도매인 ③

  • 입력 2017.07.21 10:36
  • 수정 2017.07.21 10:39
  • 기자명 권순창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현재 가락시장 시장도매인제 도입 논쟁은 기실 가락시장 내부 유통주체들 간의 싸움일 뿐, 정작 시장을 이용하는 농민들은 내용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 과연 시장도매인제 도입은 농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사실 거래시스템이 판이한 만큼 경매와 시장도매인 거래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다만, 처음으로 시장도매인제를 접하고 경험해 본 농민들은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국내 최대 매실 주산지인 전남 광양시 다압면 농민들은 올해 처음으로 6월 한 달간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에 매실을 출하했다. 올해 초 강서시장 측의 산지설명회를 계기로 난생 처음 시장도매인제를 알게 됐고, 기존 경매 출하보다 유통비용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만족. 농민들의 추산에 따르면 시장도매인 출하 시 농가수취가는 매실 10kg당 평균 2만원대 초중반으로, 농협을 통한 경매출하보다 7,000원가량이 더 높았다. 농협에서 해 주던 선별·포장작업 등을 직접 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충분히 인건비를 뽑고도 남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역농협들도 나름대로 때론 적자까지 감수하며 출하를 중개하고 있지만, 도매시장 내부에서 유통비용을 좀더 줄일 여력이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물론 가격 문제는 시장도매인들이 신규 출하고객을 특별히 우대했을 가능성도 있고, 선별·포장·운송을 직접 담당하게 된 농민들이 최대한 비용을 줄이려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경매제시장의 도매법인이나 중간출하자(지역농협, 산지유통인 등)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농가수취가 편차는 훨씬 줄어들 수도 있다. 가격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농가와 도매시장 간 관계 형성이다.

도매법인이 불특정 다수의 물량을 취급하는 경매제와 달리 시장도매인은 출하자 개개인과 긴밀한 관계 형성이 가능하다. 농민들은 선별과 포장을 어떻게 했을 때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지 소비자의 요구를 바로 전달받을 수 있고, 시장도매인의 조언으로 농가 단위에서 만들 수 있는 간단한 가공제품이 상품화되기도 한다.

오늘 저녁에 출하해서 내일 아침이면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신속성도 장점이거니와, 가격이 적게 나왔을 때 전화를 걸어 따져묻기도 경매제에 비해 편하다. 다압면 매실농가 장대옥씨는 “소비지 정보가 빠른 것이 큰 장점이다. 바로바로 대금이 입금되고 값이 싸면 싼 이유에 대해 납득 가능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 미심쩍은 부분이 없다”며 흡족해했다.
 

올해 처음으로 시장도매인에 매실을 출하한 광양 다압면 고사마을 농민들이 수확이 끝난 매실밭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하지만 농민들이 꼽는 가장 큰 장점은 따로 있다. 출하선택권의 확대, 즉 농산물 유통의 칼자루를 농민들이 쥐게 됐다는 점이다. 시장도매인 출하를 하다가도 가격이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지 농협(경매)이나 다른 시장도매인으로 출하처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을 정해 놓고 조금만 늦어도 출하를 받지 않던 농협들이 이제는 어떻게든 물량을 더 받으려 급급해한다. 시장도매인은 시장도매인대로 산지에 선별기 등을 지원하며 출하를 장려한다. “농민들이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구영 다압면장은 “지금까지는 경매를 중개하는 농협이 사실상 독과점적 지위를 갖고 있었는데 시장도매인을 통해 이제야 경쟁체제가 갖춰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매출하는 ‘농협’, 시장도매인 출하는 ‘농민’으로 출하주체가 완전 분리된 이 지역 특성상 경쟁효과는 산지에서 농협-시장도매인 간에 활발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단적인 예로 ‘농협을 통한 경매출하’와 ‘농협을 통한 시장도매인 출하’가 있다고 한다면 경쟁은 산지가 아닌 도매시장 내에서 도매법인-시장도매인 간에 불이 붙게 된다. 가락시장 같은 대형도매시장이라면 경쟁양상은 더욱 치열할 것이며, 도매법인의 재정적 여유가 지역농협보다 월등히 높음을 감안한다면 경쟁으로 인해 출하자에게 돌아갈 편익 또한 훨씬 커질 수 있다.

시장도매인 간에도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올해 다압면 농민들은 매실 수탁을 희망한 16개 시장도매인 중 매실 판매 유경험업체 8개를 추리고, 이 가운데 사장이 직접 판매영업을 하는 3개 업체만을 선택해 매실을 출하했다. 시장도매인의 점포 수만큼 출하자의 선택지도 더 넓어지는 것이다.

다압면은 매실에 이어 감·양상추·복수박 등의 시장도매인 출하를 준비하고 있다. 인근 읍면에서까지 시장도매인 출하를 문의해올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이상호 광양시 매실원예과장은 “농산물을 대규모로 유통해줄 수 있는 주체는 당연히 많을수록 좋다. 경매든 시장도매인이든 결국 선택은 농민들이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