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 “올해 농사 끝나”
상실감 속 피해 복구 ‘구슬땀’

[ 르포 ] 수마가 휩쓸고 간 후, 충북 청주는 지금
‘40여 년 만의 수해’ 시간당 최고 102mm 폭우
농작물 2,608ha 피해, 충북 전체 피해면적 중 80% 해당
정밀한 피해조사 및 복구 지원 시급

  • 입력 2017.07.21 10:28
  • 수정 2017.07.21 15:03
  • 기자명 장수지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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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19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에서 윤순근씨가 수해를 입은 자신의 고추밭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윤씨의 밭은 지난 16일 기습적으로 쏟아진 폭우에 밭 옆으로 흐르는 냇가의 둑이 무너지는 바람에 토사에 휩쓸려 버렸다.

지난 16일 충북에 쏟아진 폭우로 청주를 비롯한 증평, 괴산 등 도내 대부분 지역의 주택과 농경지 등이 침수·매몰·유실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청주의 경우 평균 290.2mm, 시간당 최고 102mm의 비가 쏟아져 지난 19일 기준 집계된 피해상황은 농작물 2,608ha, 유실·매몰 농경지 223ha로 피해액 규모는 132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정밀조사가 계속 이뤄지고 있어 피해규모는 증가될 전망이다.

지난 19일 청주시청 직원들이 수해를 입은 미원면 운암리의 한 인삼밭에서 피해복구를 돕고 있다.

상당구 미원면 운암리의 농민 김용배(66)씨는 3년 전 심은 인삼의 수확을 1년 앞두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4,000평의 인삼밭 중 3,000평이 침수, 나머지 중 700평은 유실·매몰됐다. 

그 중에서도 마을 어귀에 위치한 김씨의 인삼밭 700평은 달천에 접해있어 피해가 더욱 막심하다. 지난 19일 찾아간 김씨의 밭 주변에서는 유실된 인삼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또 밭은 온통 토사로 뒤덮여 가림막은 물론 간간히 드러난 잎과 열매, 삼으로 원래 그 곳이 인삼 밭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시에서 지원하는 복구인력을 기다리던 김씨는 “미원면은 80년대 큰 태풍으로 하천이 범람한 이후 근 40년 만에 이렇게 큰 수해를 입었다”며 “경제적으로 너무 큰 손실을 입었다”고 말했다.

재난지역을 방불케 한 운암리 곳곳에서는 침수·매몰된 농경지와 주택이 대부분이어서 멀쩡한 논·밭을 찾아보기가 되레 힘든 상황. 이순기 운암리 이장은 가재도구를 꺼내 소독 중인 집을 가리키며 “처마 밑까지 물이 차 지금 한창 복구 중인데, 다른 집들도 대부분 물이 찼기 때문에 서로 지원을 요청 중이라 퍽 난감한 상황”이라 밝혔다. 

이어 “농작물도 피해가 상당하지만 논·밭 등은 복구할 엄두도 내지 못해 그냥 올해 농사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주택 피해를 입지 않은 일부 농민들만 농작물이나 논·밭을 복구하려 노력 중이다. 하지만 대부분 토사가 너무 많이 유입돼 손 댈 방법이 없는 상황이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침수된 뒤 물이 빠진 마을은 폐허를 방불케 했다. 지난 19일 운암리의 한 주민이 마을 골목마다 꺼내놓은 생활용품 등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올 가을 4년근 도라지 수확을 앞두고 있었던 농민 한명구(60)씨의 밭은 마을 안 쪽 미원천에 인접해 있다. 하지만 단 몇 시간의 폭우로 천이 범람했고 도라지 밭 대부분에 토사가 가득 쌓이고 말았다. 

한씨는 “수확을 앞두고 도라지 대를 잘라야 하는데 아직 자르지 않은 덕에 토사 대부분이 도라지 대공에 걸렸고 밭에 쌓여 그나마 주변 밭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씨의 도라지 밭 2,000평에는 약 20cm가량의 토사가 쌓였지만 간간히 드러난 작물로 어느 정도 밭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해를 입은 도라지는 뿌리가 상해 수확을 장담할 수 없다. 더구나 밭을 복구하려 해도 인근 마을 주택의 침수피해가 너무 커 장비나 사람을 부를 수도 없고 갯벌처럼 변한 밭은 발이 푹푹 빠져 들어갈 수조차 없는 상황. 한씨는 떠내려 온 시설물과 쌓인 토사를 손으로 직접 치우며 밭을 돌보고 있었다.

미원천이 범람하며 밀고 들어온 토사에 수확을 앞둔 도라지밭이 엉망이 됐다. 지난 19일 한명구씨가 토사와 함께 묻혀 있던 비닐을 걷어내고 있다.

 다리 건너 옥화리도 상황은 마찬가지. 둑이 터져 자갈과 돌로 온통 뒤덮여버린 고추밭의 주인 윤순근(75)씨는 손조차 댈 수 없는 밭을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700평의 밭에 고추와 콩, 수박 등을 재배하는 윤씨는 폭우가 쏟아진 당시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윤씨는 “우리 밭 고추는 그 긴 가뭄을 잘도 견뎌내서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도 고추가 잘될 수 있냐며 온갖 부러움을 사곤 했다”며 “계속 가물다가 몇 번 비가 와서 해갈은 되겠거니 했는데 일요일 6시부터는 앞이 보이지도 않게 비가 쏟아져 밭이 이렇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밭을 볼 때마다 착잡한 심경뿐이라 집 밖으로 나오기도 싫었지만 또 정성을 쏟았던 지라 외면할 수 없어 밭 주위를 계속해서 서성이고 있었다.

윤씨의 밭 한편에 자리한 비닐하우스는 재작년 폭설로 무너져 작년에 다시 비닐을 씌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호우로 또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윤씨는 “나는 할아버지랑 둘이 밭을 일구는데 나이가 든 노인들이라 복구는 꿈도 못 꾸고 있다”며 “인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인데 내일 모레 비가 또 온다고 해서 지금 큰 걱정”이라 말했다.

지난 19일 운암리의 한 들녘에서 충청북도교육청 직원들이 엿가락처럼 휘어진 비닐하우스에서 비닐을 걷어내고 있다.

충북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라 피해유형과 재원별 복구계획을 수립했다. 19일 기준 복구예상액은 56억원으로 국가보조는 33억원에 달한다. 충북도는 농작물·농업시설 긴급복구 및 침수 농작물의 병해충 방제작업을 독려하는 한편, 국가재난관리시스템(NDMS)에 정밀 피해조사결과를 입력해 국고지원대상을 판단·확정하고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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