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와 위생검역 조치

  • 입력 2007.02.01 00:00
  • 기자명 박상표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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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와 위생검역 조치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 박상표>

▲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편집국장 박 상 표

불과 30∼40년 전만 하더라도 5일에 한 번씩 장이 서는 날이면 그야말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장날에 쌀이며 보리를 팔아서 옷도 사고 신발도 샀다. 장에서 팔리는 농산물들도 대부분 50∼100리 안팎의 지역에서 재배되었고, 그만큼 신선하고 안전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쌀이나 쇠고기 같은 먹거리를 손쉽게 산다. 농산물의 원산지도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미국산 쌀, 호주산 쇠고기, 중국산 콩 등 각양각색이다.

농산물이 이동하는 거리가 멀다보니 걸핏하면 대형 식중독 사고가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마구 밀려들어오는 수입 농산물이 터무니없이 싼 값에 팔리고 있어 농민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런 경우에 제대로 된 정부라면 수입 농산물에 높은 관세를 물리고, 위생검역 조치를 까다롭게 해서 농민들이 되도록 피해를 보지 않도록 보호무역 조치를 취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의 보호무역조치 중에서 가장 강력한 수단이 위생검역이다. 쇠고기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한국의 쇠고기 값은 미국보다 2∼4배 더 비싸다.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대량 한국으로 들어오면 한우 값은 폭락하게 된다.

그래서 정부는 수입산 쇠고기에 40%의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경우, 40% 정도의 관세를 감수하고 쇠고기를 수출하더라도 엄청나게 많은 이익이 난다.

그런데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 정부는 위생검역 조치를 발동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자체를 중단했다. 위생검역 조치로 미국산 쇠고기가 아예 한국 시장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강력한 위생검역 조치를 취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손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광우병이나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 같은 질병에 오염된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의 수입을 금지함으로써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위생검역 조치는 농민도 보호하고 소비자의 건강도 지키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반면에 수출국의 입장에서는 위생검역 조치는 ‘눈에 가시 같은’ 장애물이다. 그래서 온갖 이유와 명분을 만들어서 위생검역이라는 장벽을 없애버리려고 한다.

따라서 한미FTA 3차 협상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가 “미국 입장에서는 의약품, 자동차, 농산물, 위생검역 분야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미국이 위생검역 분야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미국은 유전자조작 농산물 관련 전문가 협의를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유전자조작 농산물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미국의 몬산토 사는 전 세계의 유전자 조작 씨앗과 농약을 90% 이상 독점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미국은 유전자조작 농산물이라고 따로 표시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심지어 미국은 유전자조작 농산물이라는 말이 소비자들에게 혐오감을 준다고 하여 ‘생명공학기술’이라는 제법 그럴싸한 말까지 만들어냈다.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는 콩, 콩나물, 옥수수 등과 같은 농산품이나 가공식품에 3% 이상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포함된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표시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한미 전문가 협의를 열어서 유전자조작 식품에 대한 표시를 아예 없애거나, 표시대상을 5%로 높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미국은 농약잔류량 검사를 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렌지나 감자 같은 농산물을 미국에서 우리나라까지 배로 싣고 오려면 보통 1개월 가량 걸린다.

또한 오는 길에 몹시 무더운 적도 지방을 지나기 때문에 신선한 과일이나 농산물이 벌레가 먹거나 곰팡이가 슬게 된다. 그래서 농산물 최대 수출국인 미국이 개발한 방법이 농산물을 방부제나 농약에 담그거나 방사선을 쬐는 것이다.

이렇게 수확 후 농약처리를 한 농산물은 몸에 해로울 수밖에 없다. 이미 벌레가 먹으면 죽는 밀가루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전혀 싹이 나지 않는 감자가 여러 차례 발견된 것만 봐도 얼마나 해로운지 알 수 있다.

셋째, 미국은 지역화조건을 수용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역화 조건이란 미국의 텍사스 주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을 때, 미국산 닭고기 전체에 대해 수입중단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텍사스 주의 닭고기만 수입을 중단하고, 나머지 주는 계속 수입하라는 말이다. 이것은 광우병과 조류인플루엔자 등으로 타이슨 푸드, 카길 등 거대 기업들이 수출길이 막히자 새롭게 만들어낸 논리다.

현재 정부의 협상태도로 봐서는 한미FTA 협상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거의 모두 다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농민들은 생계를 잃게 되고, 국민들은 건강을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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