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으로 변한 간척지 논, 천재인가 인재인가

농어촌공사 “담수호 방류량 예년의 절반수준” vs 농민들 “가뭄 오기 전에 이미 과다하게 물 뺐다”

  • 입력 2017.07.16 10:43
  • 수정 2017.07.16 15:45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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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12일 천수만경작자협의회 소속 농민 300여명이 염해를 입은 간척지 논에 대한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와 이앙기 등을 실은 5톤 트럭 등을 앞세우고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까지 행진하자 경찰이 이들의 행렬을 막고 있다. 결국, 경찰은 트랙터가 실린 5톤 트럭 8대를 농식품부 앞까지 행진토록 허용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2일 천수만경작자협의회 소속 농민 300여명이 염해를 입은 간척지 논에 대한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며 트랙터와 이앙기 등을 실은 5톤 트럭 등을 앞세우고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까지 행진한 뒤 농업용수 관리의 책임을 물어 정승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의 해임 등을 농식품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모내기를 두 번, 세 번 했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지 않아 말 그대로 ‘염전’이 된 간척지 논에 심은 모는 자라나지 못하고 계속 말라죽었다. 그러나 단지 ‘가물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하늘을 원망하며 체념하기엔 농민들은 억울했다. 명백하게 보고 들은 바가 있었던 탓이다.

지난 12일, 충남 천수만 A·B지구 간척지에서 논농사를 짓는 서산과 홍성의 농민 300여명이 경작지구 인근 간월암주차장에 모여들었다. 트랙터 30여대, 그리고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1톤 트럭과 함께였다. 이들은 이미 지난달 20일 같은 장소에 모여 한국농어촌공사 천수만사업단까지 ‘트랙터 행진’을 한 바 있었다. 처음 심은 모가 염해로 말라 죽는 것을 보고난 뒤였다.

염분 농도가 높은 간척지 토양의 특성 상, 강수량이 부족하면 논물의 염도를 낮출 수 없어 모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이를 막기 위해 간척지의 농경지는 함께 조성된 담수호의 물을 끌어 농사를 짓는다. 그러나 지난 6월 간월호의 저수량은 23%까지 떨어져 재이앙을 한다해도 도저히 생육을 바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가뭄이 지속되는 동안 천수만 간척지 논의 염도는 영농한계치인 2,800ppm을 훌쩍 넘은 4,000ppm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는 것은 농어촌공사가 손 쓸 수 없는 일에 속하거늘, 이들은 어째서 규탄의 대상으로 농어촌공사를 지목한 것일까. 피해 농민들은 이번 사태가 가뭄으로 인한 ‘천재’가 아닌, 농어촌공사가 간척지에 물을 공급하는 간월호의 물을 보존하지 못해 벌어진 ‘인재’라 말하고 있다. 지난 겨울 농어촌공사가 자신들과의 협의 없이 물을 방류해 지금과 같은 사태가 났다는 주장이다.

농어촌공사는 즉각 반박 자료를 냈다. 인근 양식장 피해, 저지대 침수, 농업용수 수급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년 수준으로 수위를 관리했지만 극심한 가뭄으로 염해피해를 막을 순 없었다는 설명이다. 농어촌공사는 올해 평년보다 비슷하거나 많을 것이라던 기상청의 예측과 달리 평년대비 30%에 그친 서산 지역 강수량이 염해의 원인이라며, 간월호의 올해 방류량은 872만톤으로 전년대비 44%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 농민들은 이 주장이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천수만경작자협의회 이우열 회장은 “지난 봄 가뭄의 영향권에 접어들기 전 간월호를 관찰했을 때 이미 물이 빠져 있던 자국이 선명했다”며 예년 수준을 유지했다는 주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또 “양수기로 물이 올라오지 않자 지난 5월 정승 농어촌공사 사장이 이곳을 방문해 수중펌프 설치를 지시한 것이 이미 스스로 수위조절 실패를 인정한 꼴이 아니었겠느냐”며 “지금까지 수십년 농사를 지으며 심각한 가뭄이 여럿 있었지만 이 정도의 위기를 겪어본 적이 없었다”고 증언했다. 인위적인 수위 조정이 없고서는 이번 사태가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피해 농민들은 서명을 모아 농어촌공사에 대한 감사청구서를 감사원에 제출할 계획이다.

간월암을 출발해 예산수덕사IC·서세종IC를 지나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영록, 농식품부) 청사 앞에 트랙터가 실린 5톤 트럭 8대를 세운 농민들은 집회를 열고 “정승 농어촌공사 사장 사퇴하라”, “농식품부 관계자 나와라!”를 끝없이 외쳤다. 최국영 천수만경작자협의회 사무국장은 “1만ha에 이르는 농경지가 초토화 돼 있다. 수매가로 따지면 600억원에 이르는 손실”이라며 “그러나 정부는 법과 제도를 들며 재해지역 선포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이 심정을 알 수 있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피해농민들은 정승 농어촌공사 사장의 퇴진과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집회를 이어갔다.

발언에 나선 농민 이두원씨는 “(농어촌공사 관계자들은) 생명인 물을 방류해놓고 ‘수문은 열라고 있는 거다’, ‘수세도 안 내면서 무슨 상관이냐’라는 망언을 쏟아냈다”며 “그동안 농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표출된 것 아니냐, 국회의원 이언주가 밥하는 아줌마라고 표현한 것과 뭐가 다르냐”며 공무원들의 태도를 질타했다.

악에 받친 ‘나오라’는 외침이 계속 이어지자 농식품부 관계자가 나와 경작자협의회 지도부와 면담에 들어갔다. 농식품부와 천수만경작자협의회는 일주일내로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과 면담 자리를 가지기로 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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