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수다 권하는 사회

  • 입력 2017.07.14 23:33
  • 수정 2017.07.14 23:38
  • 기자명 구점숙 (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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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구점숙 (경남 남해)]
 

구점숙 (경남 남해)

별스런 가뭄과 별스런 장마도 끝이 나고, 이제 무더위만 남았습니다. 이 철이 오기까지 쉼 없이 일하느라 고단했던 농민들의 몸을 잠시나마 쉬게 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물론 농사일은 끝이 없고 한더위를 피해 짬짬이 밭도 메고 논도 돌봐야 하는 지라 온전히 쉰다고는 못 합니다. 하지만 농번기 보다는 좀 편하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요즘에는 국민안전처에서 어찌나 폭염주의문자를 많이 날리던지 한 더위에 일을 하면 국가의 령을 어기는(?) 모양새이므로 착한 국민답게 쉬어줘야 합니다. 동네 어귀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한 그루 있다면 운치도 있고 마을 쉼터로 안성맞춤일 텐데 아쉽게도 우리 마을에는 그런 곳이 없습니다. 우리 마을에는 후손들의 휴식까지 내다보는 한량어르신이 아니 계셨나 봅니다. 대신 요즘에는 시대에 맞게 마을회관에서 시원하게 선풍기 바람을 쐬며 지내십니다. 게다가 한더위에는 무더위 쉼터 역할을 하라고 전기세도 지원을 해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니 이 부분은 나라가 잘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하여 이때가 되면 마을 분들이 부식거리와 간식거리를 챙겨서 회관으로 모입니다. 이른바 수다의 계절인 셈이지요.

어머니께서도 아침 일찍 깨밭이나 텃밭을 돌보시고, 우리가 어질러놓은 장갑을 빨아서 널어 놓으시고는 아침식사를 하시자마자 회관으로 가십니다. 그런 날은 어쩐지 생기가 돕니다. 무언가 목적 있는 삶이 되는 것이지요. 마을 분들과 10원짜리 화투놀이를 하시거나 이야기 꽃을 피우며 함께 시간을 보내시는데 매일 만나도 반갑고 즐겁나 봅니다. 저녁밥을 먹을 때면 어머니께서는 낮에 회관에서 나눴던 이야기 중 우리 부부와 함께 나눌만한 내용을 당신의 생각까지 보태어서 말씀을 하십니다. 그럴 량이면 나는 추임새를 넣으며 그래서예? 옴마야, 그렇구나, 라며 어머니가 더 말씀하도록 부추깁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내용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은 없습니다. 특별난 내용도 아니거니와 대부분은 했던 말씀을 또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는 어머니만큼 마을 분들의 삶을 속속들이 모르거니와 깊이 있게 사귀어오지 않아서 관심이 떨어지기기도 합니다. 다만 어머니께서 그 연세에도 기력을 잃지 않고 누군가의 삶을 이야기 나눌 만큼의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가능한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사시라는 의미로 추임새를 넣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은 종종 어머니께 핀잔을 줍니다. 말을 아끼라는 둥, 말을 너무 함부로들 한다는 둥 사람들의 수다를 약간 멸시하는 태도입니다. 암만요, 그렇겠지요. 과묵하기로 치자면 남편은 정승감 정도이니 다른 사람의 수다를 싱겁게 여기거나 문제시하겠지요. 그렇지만 수다야말로 소통의 가장 원활한 도구인 셈인걸요. 마음속의 생각이야 천 가지 만 가지지만 일단 생각을 정리해서 밖으로 내 뱉는 순간에는 스스로도 검열을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이목도 헤아리는 만큼, 보다 인간적인 기준에 적합하도록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남을 흉보는 것도 역기능 보다는 순기능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남의 흉을 말하는 순간 그것은 사회적 기준이 되는 셈이니까요. 저 궂은 줄은 모르고 남 궂은 줄만 아는 이기심도 있지만, 확실히 혼자서 생각하고 혼자서 실행하는 사람보다 수다를 수없이 떠는 사람이 대형사고를 치거나 자괴감에 빠질 가능성이 적습니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문화가 과묵함을 중요시 여기기는 합니다. 과묵하면서 수용적인 정치인을 보다 이상적인 유형으로 보는 편이니까요. 그렇지만 이면에는 폐쇄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소통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알아서 잘하고 눈치껏 잘해야 했던 지난날의 농촌 공동체에는 참아야하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것도 힘이 약한 쪽에서 말이지요. 모두가 격 없이 어울려 사는 데는 소통이 최고의 도구입니다. 그것이 이른바 수다가 아니겠습니까? 하니, 수다를 멸시하지 말고 공감하고 지지하고 격려하는 품격 있는 수다를 권하는 세상이 되도록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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