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가락시장 시장도매인제 도입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시장도매인 거래의 투명성·안정성이다. 일부 출하자들은 시장도매인제 도입을 극단적으로 과거 ‘위탁상’으로의 회귀라 표현하며 우려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시장도매인제는 입지와 성격, 시대적 환경 등 많은 여건들을 과거 위탁상과는 달리한다. 특히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을 보면 이미 상당한 수준의 투명성·안정성을 갖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공영도매시장의 의무상장제가 정착되기 전까지 농산물 유통은 소위 ‘위탁상(도매상)’들에 의해 좌지우지됐다. 출하자들의 정보와 조직력이 취약했던 시절, 농산물 가격은 상인들의 손아귀 안 깜깜이 정보로 내맡겨졌고, 출하자들이 거래 과정에서 불합리한 손해를 보거나 상인의 재정불안 등으로 대금을 떼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시장도매인 또한 결국 위탁상과 같은 도매상인의 직접수탁거래 형태를 띠며, 여기서 산지의 막연한 부정적 인식이 생겨난다.
그러나 시장도매인은 농안법에 근거를 두고 공영도매시장 내에서 허가를 받는 특정 도매상인들이다. 일정수준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영업의 전제조건으로 한다는 뜻이다. 강서시장의 경우 개설자와 정산조합이 시장도매인의 수집·판매 정보를 관리하며 경매제와 같이 품목별 평균가격을 공개하고 있다.
다만 이 가격공개는 경매제와 비교해 두 가지 단점을 갖고 있다. 하나는 정보의 신속성 문제다. 경매는 낙찰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가격정보 제공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시장도매인엔 매수와 위탁 두 가지의 거래형태가 있는데, 출하자와 미리 가격조율을 하는 매수거래는 문제될 것이 없지만, 소비처 판매를 통해 가격이 결정되는 위탁거래는 다소 시간이 걸리게 된다. 실시간 정보공개에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시장도매인 거래투명성에 심대한 지장을 주는 사안이라기보다는 시장 이용자의 편의성과 연관이 있다. 이에 대해선 개설자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전자송품장 도입 및 송품장-판매가격 입력 연동시스템을 통해 최대한 신속성을 제고하려 노력하고 있다.
두 번째 단점은 정보의 공신력이다. 경매라는 공개적인 거래방법을 통해 결정된 경락가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공신력을 갖는다. 반면 시장도매인의 가격정보는 개별 법인들의 신고에 의한 것으로, 거래액 조작과 과거 위탁상 시절의 속칭 ‘칼질’ 행태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이같은 단점은 정보의 발달이라는 시대적 환경이 보완해줄 수 있다. 지금은 누구나 다양한 유통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시장도매인 간, 혹은 경매제 시장이나 다른 유통채널과의 가격비교까지 가능하다. 정산 또한 일괄적인 시스템에 의해 관리되고 있고 투명성에 대한 공식적·비공식적 감시장치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는 셈이다. 출하자·소비자에 대한 기만은 더 이상 쉽지 않은 일이다.
가격정보 공개와는 별개로 출하대금 정산의 안정성 문제도 시장도매인의 상대적 약점으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실상 강서시장 13년 역사상 시장도매인 파산 사례는 단 1건 뿐이다. 1차적으로 개설자가 시장도매인 지정 과정에서 신중을 기한다는 뜻이며, 최근엔 대금정산 안정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정산조합까지 설립하며 논란을 불식시켰다. 시장도매인의 거래 투명성과 안정성은 점점 더 견고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경매제는 과거 위탁상의 폐단을 근절하기 위해 등장했고, 시장도매인제는 그런 경매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등장했다. 위탁상과 시장도매인은 그 역사와 성격이 엄연히 분리돼 있으며, 시장도매인제 도입은 위탁상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시대적 흐름에 따른 새로운 변화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