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농업] 남북관계, 쉬운 것부터 하자?

  • 입력 2017.07.14 11:38
  • 수정 2017.07.14 11:39
  • 기자명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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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을 발표한 이후 일각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이나 평창 동계올림픽 혹은 국제기구를 통한 영유아 지원 등에서 시작해 남북관계를 점진적으로 풀어가자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정치군사적 사안은 민감하고 쉽게 접근할 수 없으니 인도적 사안이나 스포츠 교류 등 이른바 ‘쉬운 것’부터 먼저 시작하자는 얘기다.

그런데 이런 접근법은 매우 단편적인 생각이다. 그 이유는 과거의 사례만 보더라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당시에도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고,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측이 참가했고, 의약품 등 인도적 교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했고, 이벤트가 끝나면 다시 남북관계는 원점으로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반면에 노무현정부 당시 북측의 핵실험이 있었고 남북관계는 급격히 경색되고 군사적 긴장도 격화됐다. 그러나 불과 두 세 달이 지나지 않아 이산가족 상봉과 대북 쌀 차관이 다시금 재개되면서 남북관계가 급격히 해빙됐다.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과 10.4 공동선언은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

위 두 사례는 쉬운 것부터 풀어가자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그 결과는 완전히 정반대로 나타났다. 그 원인은 남북의 당국 사이에 최소한의 정치적 신뢰가 있느냐 혹은 없느냐의 차이 때문이다. 최소한의 정치적 신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인도적 교류나 스포츠 행사 등과 같은 ‘쉬운 것’이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촉진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반면에 정치적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도적, 스포츠 교류 등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뿐이다.

이 점은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에서 반드시 되새겨야 할 부분이다. 지금은 남북 당국 사이에 최소한의 정치적 신뢰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를 거치면서 쌓아 왔던 최소한의 신뢰가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 평창 동계올림픽, 영유아 지원 등과 같은 ‘쉬운 것’이 남북관계 개선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말이 좋아 ‘쉬운 것’이지 실제로는 전혀 쉬운 것이 아니며 또 다시 일회성 이벤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쉬운 것’은 없다. 다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새 정부가 북측 당국과 최소한의 정치적 신뢰를 만드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다른 우회로는 없다. 역대 정부의 적대적 관계를 물려받은 김대중정부가 초기에 북측과 최소한의 정치적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한 것을 되돌아봐야 한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노무현정부 시절 본인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대북정책 경험이 아니라 김대중정부의 초기 대북정책 경험이다.

‘쉬운 것’부터 먼저 하자는 기능주의적 접근은 일정한 조건이 갖춰진 범위 내에서만 유용한 것이다. 그 조건을 갖추는 것이 문재인정부가 지금 바로 해야 할 일이다. 그 과정에서 과거 금강산 관광이나 대북 쌀 차관 제공 혹은 소떼 방북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에서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혹은 통일 쌀 교류 등이 중요한 보조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다. 없는 우회로를 찾으려고만 하지 말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정공법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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