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흑우 왜 안 키울까?

증체 더뎌 38~40개월령 출하
1등급 받기도 ‘하늘의 별따기’
소득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벽

  • 입력 2017.07.14 11:12
  • 수정 2017.07.14 11:13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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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천연기념물 제546호 제주 흑우. 물론 농가에서 사육하고 있는 흑우는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된 상태다. 도외 반출도 안 돼 국내에서 유일하게 제주에서만 사육하고 도축할 수 있다. 임금님 상에 올랐다는 역사적 사실과 천연기념물이라는 현재의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흑우지만 사육을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와 자유무역협정 등 시장개방에 맞서 차별화전략으로 민간에 흑우를 보급하기 시작했지만, 담당공무원이 바뀔 때마다 정책은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 흑우를 키우라고 해서 키웠던 농가들은 “하랄 땐 언제고 왜 책임을 지지 않느냐”고 따져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농가가 사육을 기피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소득 문제다. 흑우는 한우보다 사육기간이 8개월 가량 길다. 증체가 한우보다 늦기 때문으로, 비육용 비거세우는 평균 38~40개월령에 출하한다. 그만큼 사료비가 더 들지만, 도축 후 등급판정에서 1등급 이상을 받기 어렵다.

이홍규 서귀포시축협 지도팀장은 “1년에 50두를 출하하면 1+등급을 받는 소가 5마리 나올까 말까다. 도에서 흑우를 출하할 때마다 등급별 장려금을 1++등급 100만원, 1+등급 70만원, 1등급 50만원 정도 주고 있다”면서 1등급도 나올까말까 하는 흑우에게 등급장려금은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귀포시에서는 농가가 번식을 담당하고 조합이 비육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농가의 요구에 최대한 맞춰 좋은 가격에 수송아지를 입식하는데, 지난해 우리조합 생축장에서 흑우를 사육해서 난 수익이 1억원이다. 한우였으면 3억원에 달했을 것”이라며 수익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개체수가 적다보니 수정 시 근친일 확률도 높다. 따라서 송아지 폐사율도 높은 편이고, 질병에도 취약하다. 결국 업을 이어가야하는 농가 입장에서 한우보다 오래 먹여봐야 돈이 되지 않는 흑우는 아픈 손가락과 같다.

특히, 흑우를 사육하는 농가는 신규농가가 아니고 기존에 한우를 사육하던 곳들이어서 소득차이에 대한 체감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결국 흑우를 포기하고 다시 한우를 입식하는 농가가 늘고 있는 이유다.

서귀포에서 20년 가까이 흑우 50두를 기르고 있는 양상숙씨도 처음엔 한우만 사육했었다. 양씨도 주변에서 흑우를 입식했다가 사육을 포기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고 했다. “한우보다 사육기간도 긴데 등급은 잘 안 나오고…. 이래저래 한우보다 소득이 적으니 키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던 양씨는 “그래도 천연기념물이고 우리 제주만의 명품인데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사육하는 농가가 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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