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라면 ① 라면이 우리를 키웠다

  • 입력 2017.07.09 13:31
  • 수정 2017.07.09 13:32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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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편의점이 간편식을 취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등장하면서 사람들이 그 곳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모습은 매우 흔한 장면이 되었다. 학원이나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서 나온 학생들은 물론이고, 거리 청소를 하던 미화원도 잠시 빗자루를 세워둔 채 컵라면 하나로 허기를 채운다. 야간 근무 중에 잠시 빠져나온 직장인은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아예 선 채로 그 꾸불꾸불한 국수 가락을 후루룩 소리를 내가면서 먹는다.

국물 있는 먹을거리를 유달리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마실거리(飮)와 먹을거리(食)를 동시에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라면이라는 요리다. 따라서 라면이야말로 모름지기 ‘음식’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게다가 값은 또 얼마나 저렴한가.

그러나 이 라면이라는 식품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생활에서 차지해온 위치는 시절에 따라 달랐다.

내가 처음 그 꾸불꾸불한 국수 맛을 본 것은 아마 여남은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 초가삼간에 덧대어서 작은 방 하나를 들이는 공사를 했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니 마침 점심시간이라, 목수들을 대접하기 위해서 엄니가 가마솥에서 무엇인가를 떠 담고 있었다. 훌렁한 국물에 누런 기름이 푸짐하게 둥둥 떠다니는…내가 처음 본 라면이라는 음식의 매무새가 그랬다. 엄니는 아마도 라면 서너 개를 끓여 예닐곱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국물을 원 없이 부었을 것이다.

맛이 그만이었다. 하지만 당시 라면은 특별난 음식이었으므로 좀처럼 맛보기가 어려웠다. 간혹 동네 청년들이 누구네 사랑방에 모여 라면추렴을 하기도 했다. 나는 방 하나를 더 들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행복이 내 가슴 넘칠 때 그때는 우정 / 그리움 내 맘에 넘칠 때 그때는 사랑…’어쩌고 하는 노래가 유행했다. 1960년대 말에 등장한 가수 이상열이 부른 <사랑과 우정>인가, 그런 노래였을 것이다. 뽀빠이 이상룡이 그 노래를 가지고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우스개를 했는데 ‘국수가 미장원 갔을 때 그때는 라면…’ 운운하여 사람들을 웃겼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대량공급이 되면서, 이제 라면은 맛난 특별식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끼니를 ‘때우는’ 궁핍한 서민의 먹을거리가 되었다. 아마 이 시기의 주요 소비자는 공장 노동자나 가난한 자취생들이었을 것이다. 요즘이야 계란 하나를 곁들이는 것을 당연하다 여기지만 그 시절의 자취생들에게 그것은 대단한 호사였다.

“우리, 라면 끓일 때 요놈을 한 번 넣어보자.”

함께 자취하던 동무가 어느 날 시장에서 콩나물을 사왔다. 넣고 끓여봤더니 맛이 썩 괜찮았다. 이후 바지락도 넣어보고 감자도 넣고 끓여봤다. 그 시절에 자취생들 사이에 ‘라면을 너무 많이 먹으면 콧잔등에 여드름이 생긴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얼마 전 TV를 보니 콩나물을 넣고 끓인 라면을 새로이 개발한 요리법인 양 으쓱해하던 요리사가 있던데 그거 70년대에 자취생들이 이미 다 해보던 방법이었다.

라면을 끓여 먹을 때 매우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라면은 어쩔 수 없는 패스트푸드이다. 시간을 지체하면 꽝이다. ‘불어터진 라면’은 맛없는 먹을거리의 상징이다.

군대에 갔을 때 아, 이제 라면에서 해방되나보다, 했는데 아주 해방되는 건 아니었다. 일요일 중식 한 끼는 라면이었다. 그런데 수백명분의 라면을 한꺼번에 끓이다 보니 늦게 배식 받은 병사의 그것은 그야말로 불어터져 있었다.

80년대 중반에 결혼을 했을 때 나는 더 이상 라면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우선 기뻐서 만세를 불렀다. 이후로 20여 년 동안 라면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런데…그 진저리 치던 라면을 요즘은 더러더러 먹고 싶어져서 가끔 끓여먹는다.

이제는 부대찌개나 떡볶이, 그리고 심지어는 민물고기 매운탕에까지 라면을 함께 넣어 먹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라면은 그 자체로 독립된 요리이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요리의 보조 재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라면이라는 식품은 어떤 사회적 배경에서, 누구에 의하여, 어떤 경로로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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