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살며 사랑하며 살며 배우며

  • 입력 2017.07.09 13:30
  • 수정 2017.07.09 13:31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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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풀꽃 1. 나태주

위 싯구는 모든 사물에게도 다 해당되지만 특히 우리 여성농민들을 볼 때 마다 느끼는 제 마음과 같습니다. 여성농민이라고 제 이름을 부른지 30년이 다 되어 갑니다만 아직도 그 뒤를 따라가지 못하고 우리 여성농민 어르신들의 삶과 지혜에 감동할 뿐입니다.

# 농사일 중에서 제일 힘든 일 중의 하나가 ‘풀이 꽉 배긴 밭의 비닐을 걷는 일일 것이다’라는 생각을 얼마 전 양파를 수확하고 난 밭의 비닐을 걷으며 생각했습니다. 5~6월의 생명력 넘치는 태양은 거름을 한껏 먹고 시커멓게 올라오는 풀들을 얼마나 성하게 하는지 하룻밤이 무서울 정도로 커 옵니다. 한 차례 쭉 뽑아놓고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섰다가 논일을 하고 다시 돌아보면 어느새 풀들은 한 번도 뽑지 않은 밭인양 양파보다 더 웃자라 있기 일쑤입니다.

올해 우리 양파밭이 그러했습니다. 미리 풀을 뽑고 비닐을 걷어내고 양파를 뽑는 것이 순서이나 늠름한 명아주와 피 앞에서 엄두가 안 나 풀 속에서 양파만 쏙쏙 뽑아내고 비닐을 걷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풀이 꽉 움켜지고 있는 비닐을 하나하나 손으로 뜯어내야 할 판이었습니다. 뜨거운 태양아래 비닐과 씨름하고 있자니 온 동네 할머니들이 지나가시다가 한 마디씩 하십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옆집 할머니의 조언은 언제나 저를 구원해 줍니다.

“새댁, 손으로 하지 말고 요 호미 가지고 해 봐” 라며 호미를 내미십니다. 작고 가벼우면서도 비닐을 긁어내기 좋게 날렵한 호미. 아, 능률 백배입니다! 여든이 넘으신 옆집 할머니를 보면서 저는 매번 감탄합니다. 부지런하기도 하지만 얼마나 요령이 있으신지 어려운 일이 닥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얼굴입니다.

# 몸이 안 좋아서 활발하게 일을 하시지는 못 하시지만 가장 풍성한 텃밭과 가장 많은 씨앗을 가지고 계시는 담뱃집 아주머니. 동네에서 담배를 팔다가 그만 두신지가 1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불리십니다. 담배집을 하던 그 시절, 한밤중에도 염치불구하고 문 두드리는 청년들에게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셨던 분. 꾸러미공동체 활동을 같이 하고 계시는데 간간이 나직이 내 뱉으시는 말씀 속에서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감동을 받습니다.

“나는 꾸러미 하는 재미로 살아.” 그 분의 사연을 조금은 알기에 그 말 한 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나는 이렇게 먹는 사람을 생각하며 농사짓는 것을 덕을 쌓는 일이라고 생각해.”

아, 이보다 더 진심이 있을까요?

옆집, 앞집, 뒷집 여성농민들을 보면서 배웁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기죽지 말고 살아봐

꽃 피어봐」- 풀꽃 3.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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