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장 하면 참 좋지?”라는 물음

  • 입력 2017.07.09 13:12
  • 수정 2017.07.09 13:16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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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재 전 조합장]

조합장을 하고나서 첫 명절인 추석이 됐을 때, 생각하지도 않았던 선물들이 농협과 집으로 밀려들어왔다. 일순간 당황했지만, 어떤 기준을 정하고 들어온 선물들을 분류해 처리한 시기 즈음에 “농협조합장을 하니까 좋지?”라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의 의도가 정확하게 이해되지 않아서 ‘예’ 하기에도 그렇고, ‘아니오’ 하기에도 그런, 난처한 입장에 처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가 안 됐지만 조합장 재임기간 중에 그런 질문을 몇 번 받고는 그 질문에 묘한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합장이면 대외적으로는 기관장 대우를 받고, 안으로는 높은 보수에 농협의 전권을 손에 쥐고, 판공비도 적정히 쓸 수도 있고 하니 좋지?’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는 그 질문을 하는 분이 이상하게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시각으로 보건, 조합장은 매우 힘든 자리라고 나는 느꼈다. 도시지역은 도시 지역대로 어려움이 있겠지만, 농촌지역의 조합장은 참으로 어려운 자리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조합장 하니 참 좋지?”라는 물음엔 농협 및 조합장에 관한 부정적인 시선이 담겨 있다. 여전히 조합장을 권력으로 여겨 어긋난 방향으로 활용하는 조합원과 조합장이 있다면 이는 농협 전체로서도 불행한 일이다.

한 번 조합장은, 죽을 때까지 조합장

여러 시각에서 볼 수 있겠지만 조합장직을 생산적인 개념에서 보면 매우 좋은 자리일 수도 있겠고, 조합장이 해야 하는 비생산적인 행위를 보면 매우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업협동조합장은 생산자조직의 대표이니 생산적인 행위를 통해 구성원-조합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면 보람이 있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조합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매우 비생산적인 일들에도 끌려 다녀야하는 어려움도 많이 있을 수밖에 없다.

농협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농민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농민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약간의 문제 소지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영세한 각각의 농가들이 미처 하기 힘든 일들을 농협이 손 맞춰 이루는 것은 조합장으로서 매우 보람찬 일일 것이다.

보통 농협에서 최고의 의결기구는 대의원으로 구성된 ‘총회’이다. 총회에서는 결정된 많은 사업의 집행권한을 조합장에게 위임한다. 사업집행을 위임받아 시행하는 조합장이 생산적인 사업들을 진행할 때면 조합장은 분명 좋은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에는 ‘조합장을 하니까, 참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조합장으로 있었을 당시에 몇 가지의 독창적인 사업을 제외하고는 이미 협동조합에 맞는 사업들을 시행하고 있는 많은 조합들에게서 내용을 베껴서 실천하는 노력도 매우 보람차고 좋았다. 조합장을 한 번이라도 하고나면 지역에서 죽을 때까지 조합장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을 수도 있다. 조합장직을 수행한 이유로 어떤 지역 사람에게서 외면 받는 불행한 일들도 많이 있다고 본다.

다른 농협에서 베껴서 한 일

1) 우리와 이웃한 북창원농협은 교육지원사업비로 우리 지역의 주력 농산물인 단감의 개화기에 각 작목반 별로 구역을 나눠 수정에 도움이 되도록 벌통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었다. 나는 즉각 그 사업을 베꼈다. 양봉농가에 꿀벌 벌통을 한 통 당 5만원에 빌려서 우리 지역 전체에 골고루 나눠 주는 사업을 했다. 교육지원사업비 600만원을 전용하니 가능한 사업이었다. 인근 농협의 모범사업을 조합장이 판단해 그 해에 당장 실천에 옮겨 여러 농가가 이익을 보도록 지원했다.

가만히 파악해보니 이미 이웃농협은 제법 오랫동안 시행한 사업이었는데, 왜 우리 농협은 그 사업을 시행하지 않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웃한 농협의 사업을 베끼는 일은 직원-조합장의 의지만 있어도 가능한 사업이었는데, 그러한 사업들이 미처 이루지 못한 것은 농협들의 사소한 잘못으로 보였다.

2) 고령의 농가가 소소하게 생산하는 소량의 농산물을 판매하도록 하는 사업을 지원한 농산물 순회 수집은 전국 수백여 곳의 농협이 이미 하고 있었던 사업인데, 우리 농협은 그 사업을 그대로 베껴서 시행했다.

규모화와 기계화에서 젊은 농민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고령의 농민이거나 일정정도의 규모화가 이뤄져 있어도 운송과 판매에 어려움을 겪는 농가들을 위해서 농협이 순회 수집으로 판매처를 알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대다수의 농협이 시행하기 좋은 사업이었고 여러 부족함이 있었지만 지속해야할 사업이었고 조합장을 하면서 진행하니 기분도 좋았다.

3) 지금은 수도작 벼에 대한 공동방제를 전국의 많은 농협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제가 조합장을 하던 시기에는 전국의 몇몇 농협만 실시하고 있었고 이웃한 대산농협은 확실하게 그 사업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선도적으로 그러한 사업들을 시행하고 있던 농협의 사업을 우리 농협에 접목해 차량을 이용한 공동방제를 먼저 시작하고 이후에는 헬기-차량을 병행해 시행하니, 농민들도 매우 좋아했고 나름 보람도 있었다. 전체 방제비용도 절감되고 농업에 종사하는 조합원에게 많은 편의성도 제공되는 결과를 낳았다.

위에 예를 든 사업은 단순히 이웃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시행하는 사업을 그냥 베꼈지만 조합장으로서는 매우 기분 좋게, 부담 없이 시행할 수 있는 사업이었고 사업의 시행 결과도 좋았다. 그냥 이런 내용으로는 조합장을 하면 좋았다.

조합장 재임 시에 우리농협의 독창적인 사업들도 있었지만 인근의 농협들이 모범적으로 시행하는 사업들을 베끼는 노력만 열심히 해도 조합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조합장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조합장을 하니 좋지?”라고 묻는 내용에는 이런 내용을 함축한 물음은 아니었던 것이다.

“조합장은 판공비도 좀 쓰고, 좋지?”

그 시기에 내가 이해하기로는 “조합장을 하니까 좋지?”의 해석은 대단한 비꼼이 들어 있었다. 가장 모욕적으로 들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가 “조합장을 하니까 판공비도 좀 쓸 수 있고 하니 좋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나는 조합장을 하면서 농협 내의 예산 항목에 판공비라는 것을 본 적도 없다.

지갑 속에는 농협의 법인카드가 늘 들어 있었지만 업무와 관련해 쓰라고 준 것이지 사적 용도로 사용하라고 준 것이 아니었고 막상 업무와 관련해 쓸 일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조합장은 밥과 술을 사도 되는 법인카드를 갖고 있다는, 일상에서 법인카드를 쓴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놀랐다. 나는 그런 인식들이 견디기 힘들었다. 농협은 일상에서 그리 인식돼 있었던 것이다.

비용의 쓰임새가 애매한 경우가 있을 때도 많았다. 업무인지, 업무가 아닌지 나도 헷갈리기도 했지만 우스운 것은 내가 법인카드를 쓰고, 그 카드 내역서를 총무계에 제출하면 한 번도 총무계가 적정한지를 5년 동안 이야기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일 년은 365일이다. 조합장직을 수행하던 일 년 365일 중에서 120일 정도는 아침에 영농회를 비롯한 여러 조직의 행사-야유회-선진지 견학 등에 인사를 나가야한다. 우리지역의 경우는 오랫동안 조합장이 그런 행사에 나가서 인사를 했고, 나도 그 내용은 거의 답습했다. 어떤 경우에는 인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나 조합장이 동행해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떤 행사는 유익하기도 했지만, 많은 행사가 겉치레에 불과했으나 나도 그런 시간을 많이 썼다. 사무실은 그런 내용에 많은 비용을 집행했고, 나는 그 내용에 관여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진행돼 온 관행이었고 조합장으로서 무력감을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관행 대신 상식 통하는 농협 만들어야

조합장을 하던 시기에, 나이 차이는 좀 많이 나지만 성격이 화통해 사이가 좋은 조합장이 이웃한 농협에 계셨다. 회의 참석 같은 함께 할 시간의 틈새에 조합장직을 수행하다가 발생하는 일들을 넋두리 삼아 서로에게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 한 적이 종종 있었다. 일상에서 비용을 사용하는 습관도 비슷한 듯 해 조합장들의 모임에서도 가까이 지낸 분인데 이리저리 주고 받은 이야기에서 그 분은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김 조합장. 봐라. 조합장 이거 길게 하다가는 명대로 못살고 죽는다. 초상집은 기본이고, 잔치집 가야지, 병문안에, 동네마다 노는데도 인사 가봐야지. 밖에 나가면 조합원들이 난리고, 안을 보면 직원들 몇 명이 문제고, (자기)집안 일은 집안일대로 엉망이고, 내일이라도 때려 치워버리고 싶다”고 하셨다. 그 분은 조합장을 그만두면 자기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이야기 하셨다. 그러면서 어디 조합장 한분을 예로 드셨다.

“어디에 조합장이 있었는데, 한번 출마하여 떨어지고 두 번째는 당선이 되었는기라, 그라고 세 번째 출마에서 또 떨어졌는기라, 네 번째 출마에서도 떨어지고는 선거 준비 비용으로 재산 다 털어먹고는 다섯 번째 출마하려다가 부인이 만류해서 그만두고 일체의 바깥출입을 정리하고는 ㅇㅇ농사를 지어 지금은 따시게 묵고 산다더라. 나도 곧 정리하고, ㅇㅇ농사나 설렁설렁 지으며 살아야 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그 분은 아직 조합장을 하고 계시고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조합장 딱 한 번-5년 5일하고는 조합장에 더 이상 출마하지 않았다. 조합장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비생산적인 틀에 갇혀서 거지가 되기 싫었던지 나는 출마자체를 정리해 버렸다.

들은 이야기로 일본은 조합장의 평균 재임기간이 20년이고(5선), 대를 이어서 조합장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평균 재임기간이 8년(2선)이 안 된다고 하는데 문화와 정서가 그러한 모양이다. 이러한 문화와 정서의 바탕에는 생산성과 그 생산성이 가지는 산업에의 기여가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는 듯하다.

조합장은 조합원으로부터 많은 권한을 위임받아 집행하고 있다. 농협 최고의 의결기구인 총회의 의장이고, 이사회의 의장이며, 일상에서는 농업협동조합-법인의 대표이다. 이러한 조합장에게 상임이거나 비상임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농협이, 농협의 조합장이 조합원과 더불어 생산적인 일들을 하도록 해야 한다.

한번 조합장을 하고 나면 죽을 때까지 조합장이 되는 영광을 위해서는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고 그 생산적인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는 조합원-농협을 이용하는 고객들이 그런 문화를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 권한이 있는 조합장에게 설-추석명절에 인간적인 부분을 떠나서 선물을 보내는 풍토는 위험한 일이다. 그러한 풍토가 얼마나 심각하면 그것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농협 내의 위험한 풍토 중에서 관행으로 포장된 직원과 조합장의 비용 집행에 관련된 문제가 있다. 조합장 재직 시에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직원이 있었는데, 명예퇴직이라는 방식으로 조직에서 조용히 내보내려고 하니 당사자가 거부하여 징계를 통해 해직시킨 적이 있었다. 이렇게 농협에서 해직된 직원은 즉각 농협에 소송을 걸었다. 나는 피고가 됐고 그 민사 소송은 무려 조합장 임기 60개월 중에서 38개월 동안 나를 괴롭혔다.

더 심한 것은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징계해직이 확정되었음에도 승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 직원이 가진 농협조직의 상식이 무엇인지 회의가 들었다. 그 당사자의 복무한 기간의 업무를 심각하게 회의하며 살펴본 바로는 농협은 오랫동안 많은 농민들에게 신뢰 받기가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농업 현실 극복에 조합장이 앞장서야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지금 잡아가는 예산의 가닥으로는 내년의 농업예산이 전체 예산이 팽창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축소되는 쪽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다가와 있고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가장 앞장서야하는 사람들은 전국 최대의 생산자조직 대표인 조합장들이다.

어느 조합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건 안했건 이 정부의 초기에 바짝 나서서 협동조합이 농민과 이용자들에게 복무하도록 틀을 만들어야한다. 조합장직을 즐긴다고 생각하는 위험한 시선과 혹 조합장직을 권력으로 생각하는 조합원과 조합의 이용자, 조합장이 있다면 전체 농협으로서는 불행한 일이다.

지금 누가 나에게 “조합장할 때 좋았지?”하고 물으면 단호하게 “아니오. 무개념한 사람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라고 정확히 이야기한다. 농협과 조합장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선들이 너무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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