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민에게 차라리 월급을 다오!

  • 입력 2017.07.09 11:39
  • 수정 2017.07.09 11:41
  • 기자명 김훈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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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규(경남 거창)]

김훈규(경남 거창)

“내려도 독하게 내렸지 뭐! 쫙쫙 쏟아지는데, 겁나더라고! 어지간한 피해는 피해 입었다고 말도 못 붙여!”

거창의 촌놈이 강원도를 평생 갈 일이 없었는데, 불러주는 농민들이 있어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방문을 하게 됐다. 물론 강원도 첫 방문에서 느꼈지만 거창 정도면 촌이 아니라 차라리 도시라 칭하고 싶을 정도로, 심산유곡은 명성 그대로였다.

마침 가뭄의 절정이라 그 깊고 굽은 계곡마다 흐르는 물줄기를 볼 수 없었던 게 그때의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길가의 칡넝쿨은 시들어 있었고 옥수수대는 제대로 크지 못했고, 파릇한 잎은 모조리 둘둘 말려 있었다. 그런데 보름이 지나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골짝마다 물은 차고 넘쳤으며 그건 이미 숱한 농민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흘러 내리치는 폭우의 흔적과도 같았다.

“가물어서 걱정, 비가 많이 내려서 걱정, 이러다 또 태풍이 와서 쓸어버릴까 걱정, 수확할 때 제 값 받을까 걱정하다 보면 1년 다 가겠지!”

강원도 정선 아리랑 골짝에서 4시간이나 걸려 먼 길 찾은 손에게 내지르는 푸념이 거창의 여느 농민과 다름 없이 정답기만 했다.

도시에 비해 제법 평화롭고 풍광이 좋은 농촌에 내리 머무르는 농민의 스트레스 지수는 도시민보다 과연 낮을까? 소득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비교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뒤지고 있는 것이 농촌의 현실이라 치면, 삶의 질 문제와 관련해 다양하게 농민들의 처지를 비관하게 만들고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 중에 자연적 요인에 의한 농업소득의 손실, 치솟든 내리꽂히든 그로 인한 불안정한 가격의 문제는 대단히 치명적인 심적 압박 요인이 아닐 수 없는 듯 했다. 무엇 하나 명확하게 예견 할 수 없는 게 일상이 됐으니 이것을 감수하고 살아가는 농민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장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매달 꼬박꼬박 월급 받는 봉급쟁이가 마음은 편한거여! 언제 짤릴지 모르는 직장생활도 부러울 때가 있다니깐! 다달이 통장에 돈 들어오는 그런 느낌은 우리 농민들은 죽었다 깨도 모르지만, 하늘만 믿고 농사짓는 것도, 어찌 될지 모를 불안한 농산물 값에 기대는 것도 스트레스여! 큰 스트레스! 이러다가 암 걸리겠어!”

기본소득, 농민월급제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또 일부 지자체에서는 실험 중에 있다. 정책의 근거는 농민의 소득과 관련해 집중돼 있다. 농민의 생사여탈권이 그것에 치우쳐 있다고 부인할 수 없지만, 일면 심리적, 정서적인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아주 중요한 정책으로 인정하고 싶다. 죽었다 깨도 월급쟁이로 살아갈 수 없는 성정을 가진 농민들이 다수라고 확신한다. ‘농부’는 차치하고 계급적 의미를 단 ‘농민’이라는 명칭보다, ‘농업인’, 심지어 ‘농업경영인’ 이라는 명칭이 익숙해져 가는 시절이다. 목돈 만지는데 익숙하고, 그 돈 툭툭 떼어내서 인건비 주고 여기저기 연말 빚 갚기 익숙한 농민들이 다달이 들어오는 푼돈에 성이 차지도 않을 것이다.

농민월급을 원하는 정책 대상자가 아니라, 농촌에 발 붙여서 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보편적으로 지원하는 기본적인 소득의 개념이 공론화돼야 하는 이유다. 자연재해를 비롯한 모든 농업현장의 불안한 요인으로부터 최소한의 심리적 완충작용을 할 수 있으며, 인간적인 삶을 영위케 할 최소한의 희망이 농촌에 있음을 모든 국민이 알게 해야 한다.

광부가 거의 사라진 강원도 폐광촌이 박물관으로 변한 모습을 스치듯 보고 왔다. 한때는 지역의 주요 주민이었던 그들은 모조리 떠났고 살아간 흔적만이 박제돼 전시 중이었다. 농부가 농사짓고 살아간 흔적이 가까운 미래에 박제되지는 않을까? 이러다가 정말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농업의 흔적이 되지는 않을까? 농업과 농민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것이 1차, 2차, 3차, 4차, 6차로 숫자놀음하는 기이한 시대에 매몰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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