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달 1일 느닷없는 우박으로 가슴을 멍들였던 경북지역 사과농가들은 지금 씁쓸한 심정으로 재해보험을 바라보고 있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있다고 해서 대단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영주시 부석면 유득수(64)씨의 과수원은 우박을 아주 호되게 맞았다. 2,400평 과수원에서 단 하나도 성한 사과를 찾아볼 수 없고, 잎은 너덜너덜 찢어진데다 가지는 군데군데 생채기가 났다. 수세가 이 정도 되면 내년까지도 정상적인 수확이 불가능하다. 사실상 2년 농사를 망친 셈이지만 한 해분 보험금을 제대로 기대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우박 피해조사는 1차 타박률 조사, 2차 착과수 조사, 3차 수확기 전수조사 총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보험금 확정이 피해 발생으로부터 몇 달이 지난 수확기에야 이뤄지는 것이다. 유씨는 2차 조사에서 피해율 99.3%를 확인받았지만 그렇다고 보험금을 낙관할 수는 없다.
“보험금이란 게 기본적으로 20%를 자부담이라고 제하고, 거기서 또 피해를 분류해 몇십%씩 깎고 하면 보통 50~60%가 되거든. 피해율이 100%가 나와도 가을 가서 얼마가 깎일지는 또 몰라요.”
산지 농민들에 따르면 사과는 작은 타박만 입어도 과육에 심지가 생긴다. 상태 좋은 것을 추려 출하해도 가격은 70% 이상 떨어지고 가공용으로 쓰면 그보다 헐값이 된다. 50~60% 보상을 받아선 당장 큰 손해를 감내해야 한다. 더욱이 3차 조사 때까지 타박과가 썩을 경우 관리소홀로 보상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관리에는 오히려 더 신경을 써야 한다. 보험금이 확정되는 가을까지 피를 말리는 시간이 계속되는 것이다.
같은지역 이동식(58)씨의 과수원은 나무가 휑하다. 가을까지 타박과를 썩히지 않는 게 불가능할 것 같아 보험사 측의 양해 하에 피해가 심한 사과를 따냈기 때문이다. 과실이 없으면 영양이 분산되지 않아 잎눈을 틔울 가능성이 높고, 이렇게 되면 마찬가지로 내년 수확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사과를 따내야 할 만큼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여 있다.
“피해가 이 정도가 되면 1차 조사로 끝내고 보험 종료가 돼야돼요. 그렇게 하면 가공용 사과라도 남겨 관리하면서 내년 농사에 대비하겠는데, 보험이 그럴 여지를 안 주는거야.”
이씨는 또한 가입금액 증액 특약 가입자다. 우박 피해 당시 실제론 적과를 거의 마쳤지만, 보험사 기준에 의해 적과 전으로 간주돼 특약이 해지됐다. 총액 280만원의 자부담 보험료(5,000평) 중 50만원을 환급받았는데, 이는 보험금 수령액으로 치면 약 4,000만원에 해당한다. 또 사과와 병행하고 있는 원예작물들은 마찬가지로 심각한 우박 피해를 입었지만 사실상 보험을 통해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는 실정이다. 재해보험에 대한 농민들의 불만은 이처럼 여러 갈래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