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대통령의 방미, 공미(恐美)주의 공화국

  • 입력 2017.07.02 21:19
  • 수정 2017.07.02 21:39
  • 기자명 이해영 한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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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이른 감은 있지만 문 대통령이 방미에 나선다. 한편에선 아니나 다를까 자나깨나 한미동맹을 부르짖으며 먼지같은 허물이라도 들춰내어 꼬투리 잡기에 여념이 없다. 또 다른 한편이 보기에 새 대통령은 ‘촛불혁명’이 낳은 결과이기에 그가 의심의 여지없이 촛불정신을 구현해 줄 거라 믿는 모양새다.

두루 알다시피 대한민국의 지배이념에서 여전히 굳건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공미주의다. 곧 미국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다시 말해 미국의 뜻에 어긋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이런 집단심리의 근저에는 이유기를 지나지 못한 유소년기 아동이 부모, 특히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비슷한 것이 저 깊은 심층심리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나 미 기독교 근본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우리 보수 기독교 교단 내에선 사이비 삼위일체 같은 경향마저도 엿볼 수가 있다. 육신의 아버지, 아버지 미국, 아버지 하나님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또 돈도 많으며 마음씨도 좋은 남성 혹은 아저씨인 미국과 우리 사이에는 간혹 사이비 종교 같은 관계가 형성되곤 한다.

이때 양자는 서로 이익을 놓고 토론하고 경쟁도 하다 삐치기도 하는 그런 정상적 나라관계가 아니라 한쪽이 다른 한쪽을 숭배하는 그런 대상이 된다. 미국은 그렇게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 시대 토템(totem)이자 물신(物神)이다. 나라 대 나라 사이의 이익이 언제나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제관계의 기본 중 기본인 바,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최소 상식률에도 도달 못 한 중증의 집단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셈이다. 수십여 년 입만 열면 경제를 외쳐댄 탓에 우리도 경제적으론 상당 수준에 올라선 건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그리고 국제정치적으론 이유기 전(前)단계다.

멀리 되돌아 갈 것도 없이 국내 사드논란을 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어느 대표적인 국내언론은 적었다. 언제 어디서 누가 그런 광경을 봤는지는 알 길 없다. 하지만 이런 미확인 보도조차 그 날 이후 우리 언론은 마다마다 자기 이마팎에 새겨넣었고 그렇게 집단심리를 만들어 갔다. “격노”라는 언어의 배경에는 아버지 미국이 철없는 한국 아이들이 까부는 걸 알고 마치 구약성경의 하나님처럼 진노하는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기에는 이미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이제 제 2의 본성이 돼버린 저 공미주의와 자발자생적 식민화로 이어져온 어리고 미성숙한 발달장애아로서의 우리라는 강철같이 단단한 사고습관이 가감없이 투영돼있다.

미국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 혹은 안보이익의 최대치가 남북간 평화와 나아가 바라기로는 어떤 형태의 ‘통일’로부터 온다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진리다. 얼마 전 <위키리크스>는 대통령이 될 뻔했던 힐러리 클린턴의 2013년 골드만삭스 연설을 폭로했다. 힐러리가 말한 건 세가지다. 첫째, 미국은 한반도 분단을 선호한다. 혹 통일이 돼 한국이 미국이 원했던 이상으로 너무 커지는 건 부담이다. 둘째, 북한이 주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굳이 나쁘게 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반길 만하다. 감당할 수 없는 사고만 치지 않으면 된다. 셋째, 김일성, 김정일은 미국과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했고 서로 이익을 보장해 줬다. 하지만 김정은은 다를 수 있다. 이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어떤가, 이런 것이 국제정치다. 외교란 영어를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이며, 자기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정의하고 이해하며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대통령의 장도가 높은 성취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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