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소장수 - ④ 우시장으로 가는 길

  • 입력 2017.06.30 13:48
  • 수정 2017.06.30 13:52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소장수가 한 섬에서 여러 마리의 소를 산 경우 돛단배, 즉 풍선을 빌려서 육지까지 싣고 가기도 했으나, 보통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객선으로 운반을 했다. 소장수들이 가장 애를 먹는 일은 소를 배에 싣는 작업이다.

“자, 어서 올라 타자, 이랴! 아이고 요놈 봐라. 자, 다들 엉덩이 좀 밀어 봐요!”

소가 배에 타지 않으려고 심하게 버티는 바람에 예정했던 여객선을 그냥 보내고 다음 날 운송하는 경우도 있었다. 소를 객선에 태웠을 때, 소장수는 마리당 너덧 사람 몫의 운임을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객선을 이용하지 않고 풍선을 빌려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경우, 소를 배에 싣기도 힘들지만 육지 부두에다 내리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썰물 때면 배가 닿는 선착장은 파래 등의 이끼가 덮여 있어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미끄러져 넘어질 수가 있다. 소가 미끄러져서 다리라도 부러지는 날에는 우시장은 가보지도 못하고 고기값만 받고 도살장에다 팔아넘겨야 한다. 그런 경우 소 장수에게는 치명적인 손실이다.

만일 육지에 당도하기 전에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힌다 해도, 사람 목숨이 문제지 소는 걱정할 것이 없다. 천성적으로 물을 싫어하지만 일단 물에 빠졌다 하면 육지 쪽을 향하여 능숙한 수영실력을 발휘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객선으로 왔든 풍선을 빌려 타고 왔든, 일단은 육지 포구에 도착했다. 가령 남해안의 회진이라는 포구에다 소를 내렸다고 할 때, 거기서 우시장이 있는 장흥읍까지는 칠십오리나 된다. 걸어갈 엄두를 내기엔 너무 먼 거리다. 운송수단이 마땅치 않았던 옛 시절에는 어차피 걸어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소장수 이도남이 선착장에서 자박거리고 있는데 청년 하나가 다가온다.

“아이고 아저씨, 이번에는 소를 다섯 마리나 샀네요. 어느 시장으로 갖고 갈라요?”

“내일이 장흥 장날 아닌가. 오늘 중으로 장흥읍까장 가야겄는디, 한 번 해보겄능가?”

“품삯만 낫이 준다면야 한양까지도 가지라우.”

“나는 버스 타고 가서 전에 묵었든 여관에 있을 것잉께, 신경 써서 잘 몰고 오소 이.”

이 청년이 누구냐 하면, 포구에서 우시장이 있는 곳까지 소를 몰고 가는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고삐잡이’다. 고삐잡이 노릇은 주로 다리 힘이 좋은 젊은 사람들이 맡아 했다. 그들은 자기들만 아는 지름길로 소들을 몰고서 수십 리를 걷고 또 걸었다. 낮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달빛에 의지해서 밤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고삐잡이가 소들을 몰고 와서 소장수에게 인계한 곳은 읍내 우시장으로부터 1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마방(馬房)이다. 마방이란 본시 마구간을 갖추고 있는 주막집을 일컫는 말이었으므로, 제대로 하자면 소 우(牛)자를 써서 우방'이라 해야 옳겠지만, 사람들은 그냥 마방이라고 불렀고 소를 재우는 외양간 역시 편한대로 마굿간이라고 불렀다.

마방 주인은 그저 하룻밤 소를 재워줄 외양간을 제공해 주는 수준을 넘어서, 다음날 아침 우시장에 끌고 갔을 때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도록 배불리 먹여주는 일까지를 책임졌다. 물론 그는 마리 수를 계산해서 소의 숙박비용과 여물 값을 톡톡하게 챙긴다.

“소 멕일 여물이랑은 넉넉하게 준비 해논 것이여? 소들이 굶주려서 살이 쪽 빠져부렀당께.”

“걱정 마시랑께 그라네. 낼 아침에 보시요. 훌쭉한 배를 기냥, 우의정 영감 묏등맹킬로 빵빵하게 맹글어놓을 것잉께.”

이런 일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외양간에 가보니 암소 한 마리가 사라지고 없었다.

“어? 이거이 어치케 된 일이여! 고삐를 단단히 매놨는디?”

도둑을 맞았으면 마방 주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조금은 이상했다. 도둑의 소행이라면 말뚝에서 고삐를 풀고서 끌고 갔을 터인데, 목줄이 끊어진 채로 고삐와 함께 외양간에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 피 묻은 코뚜레가 부러진 채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비상이 걸렸다. 사람들을 동원해서 한나절 내내 추적을 해보니… 그 암소는 회진포구로 다시 돌아가, 갯바위에 올라선 채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끼가 아직 젖을 완전히 떼지 못 한 상태에서, 주인이 급전이 필요해서 서둘러 팔고 말았던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