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니들이 참깨 농사맛을 알어?

  • 입력 2017.06.30 13:45
  • 수정 2017.06.30 13:48
  • 기자명 구점숙 (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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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 경남 남해

농사가 힘들고 돈이 안 된다 하여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텅 빈 땅에 거름을 넣고 갈아서 씨앗을 뿌리면 싹들이 자라나 결실을 맺는데 그 참 신비롭기 짝이 없습니다. 그 조그마한 씨앗에 예견하지 못할 미래가 담겨 있으니 그래서 씨앗더러 우주라고 부르는 시인들도 있나 봅니다. 그 녀석들을 심어놓고 행여 산비둘기가 주워 먹지 않을지, 벌레가 갉아 먹지 않는 지 노심초사 살핍니다. 그러다 새싹이 고개를 땅밖으로 쏘옥 내밀면 비로소 1차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한 뼘이 지나고 몇 번의 어려움이 지나 수확 때까지 농사재미는 계속됩니다. 한 낮 대지의 기운을 받아 자라고 또 자라는 농작물을 보면 키우는 보람을 느낍니다.

그런 농사에도 남작 백작 자작 등과 같이 구조 오 작위가 있어 농사를 짓는 종류와 그 애정에 따라서 초보자와 고수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순전히 내 생각이지만요). 텃밭농사를 시작할라치면 상추나 가지, 오이 등 흔히 식탁에 자주 오르는 농사를 짓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삶이 바뀌면 조그만 땅에도 콩이나 깨를 심어봅니다. 이른바 농사의 고수가 되는 것이지요. 텃밭농사도 그렇지만 상업농사에 길들여진 농사방식에서도 콩이나 깨 등은 귀찮기 짝이 없습니다. 일단 돈이 안 되고, 손은 많이 가야하므로 기피하는 농사입니다. 게다가 값싼 수입 대용품이 넘쳐나므로 굳이 키울 필요 없이 시장에서 사면된다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니 주작농사에 떠밀려 시어머니께서 양념할 정도로 조금 심은 것을 돌보는 일조차 꺼립니다.

올해는 윤5월이 있습니다. 보통 음력 6~8월을 한더위로 치고 그 시기에 식물들이 가장 많은 태양에너지를 받으며 잘 자란다고 봅니다. 그런데 거기에 윤5월까지 겹쳤으니 음력으로 추석까지 넉 달이나 되는 셈이므로 그만큼 여름이 길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또 거기에 걸맞는 농사가 있는 법이지요. 지난 겨울, 나이 드신 여성농민 분께서 같이 일하는 우리들더러 올해는 깨농사가 맞을 것이라며 깨농사를 권하셨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밭마늘을 캐내고 심은 동네 분들의 깨밭은 이 가뭄에도 되레 더 번들번들하니 잘도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집도 깨를 조금 심기는 했지만 깨농사가 특화된 해만큼의 양이 아니라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보니 살그머니 욕심이 생겨난 것입니다. 해서 얼마 전 남편이 물 관리 차 다시 일군 묵정밭에 가리늦게 사 깨를 심었습니다. 오늘아침 가보니 비둘기가 안방처럼 드나들며 파먹더니만 그 와중에도 어린 참깨순들이 고개를 쏘옥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 재미야 말할 것도 없지요.

음력 윤5월 있는 해가 ‘깨의 해’라는 것은 매우 전문 지식이므로 여기에도 지적재산권을 부여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누구한테? 그 여성농민한테? 그 여성농민은 또 다른 어른께 배웠을 것이고 또 그 분은 더 웃어른께 배웠을 것이니 통칭 농민들의 경험과 지식을 나눈 것이지요. 그 지식을 사유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른바 농사경험이 공동의 사회적 자산이 되는 것이지요. 농민들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니 농민이야말로 사회적 자산인 셈입니다. 이 이야기는 언제 길게 한 번 해 볼 이야기지요. 아무튼 올해는 ‘깨의 해’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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