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조금과 소득보전이 만났다면

  • 입력 2017.06.23 14:13
  • 수정 2017.06.23 14:1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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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감귤 의무자조금이 올해부터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많은 감귤농가들이 자조금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다. 자조금을 활용한 홍보가 과연 얼마나 소비를 늘릴 수 있을 것이며, 생산량의 1%도 안되는 수출은 지원해서 뭐하겠냐는 등의 반응이다. 실제 실효성 여부와 관계없이 기획 단계에서 이미 신뢰를 담보하지 못하니 자조금은 벌써부터 거출률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한편, 제주도는 올해부터 일명 ‘제주형 최저가격보장제’를 시행한다. 품목별 생산·출하조정으로 가격을 안정시키고, 만약 가격이 기준가격 아래로 내려가면 농가에 소득보전을 해 주는 제도다. 당초 당근과 감귤을 우선사업대상으로 꼽았다가 결국 감귤이 제외돼 농민들이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다. 생산자 조직화 미비와 예산 문제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의무자조금과 최저가격보장제가 연계됐다면 어땠을까. 소득보장은 농민들에게 가장 체감실익이 큰 장치다. 의무자조금이 이 사업을 포함했다면 농민들의 동의를 받는 과정이 한층 수월했을 것이다. 적어도 참여 농가 인센티브나 불참 농가 패널티를 더욱 과감하게 설정할 수 있는 명분이 됐을 것이다. 또 최저가격보장제는 의무자조금이라는 확실한 생산자조직을 기반으로 함과 동시에 자조금 일부를 활용해 예산 안정성을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품목이라면 어렵겠지만, 전국의 생산농가가 모두 제주에 모여 있는 감귤이라면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물론 행정은 손사레를 친다. 자조금의 용도 자체가 홍보 위주로 정해져 있어 이를 소득보전에 활용하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절묘하게 맞아떨어질뻔 했던 두 제도가 각각 떨어져 불완전한 행보를 하고 있는 모습은 못내 아쉬워 보인다. 농식품부가 자조금의 자율권을 보장하고 필요한 법 개정 등을 지원했다면, 어쩌면 제주엔 매우 독특하고 효율적인 소득보전 모델이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의무자조금에 수급조절 역할을 은근슬쩍 떠넘긴 채 감귤 최저가격보장제가 흐지부지되는 일이다. 상생의 기회를 놓친 두 제도가 서로를 죽이는 도구로 전락하는 셈이다. 제주도가 두 제도 각각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의지를 지키지 못한다면 가능성은 다분히 높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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