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소장수 - ③ 황소가 뿔났다

  • 입력 2017.06.23 14:09
  • 수정 2017.06.23 14:1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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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소값을 흥정할 때 주인과 소장수 사이에 흥정꾼이 끼어들어서 바람잡이 노릇을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매번 매매가 성사되는 건 아니다.

“영감님, 도대체 소 값을 얼매나 쳐줘야 폴겄다는 얘기요?”

“10만원 안 줄라면 꿈도 꾸지 말랑께.”

소장수는 내심 6만5천 원 정도를 적정가격으로 예상하고 있는 터에, 10만원을 부르는 것은 터무니가 없다. 이렇게 되면 매매가 이뤄질 가망이 없다. 이런 경우 소장수가 주인을 골탕 먹이는 방법이 있다.

“8만원까지는 줄 수가 있는디, 10만원은 너무 비싸요. 담에 봅시다.”

소장수들의 시각에서는 후하게 값을 쳐봐야 6만 몇 천원이 고작인 소를, 8만원까지는 받을 수 있다고 암시를 하고는 손을 털고 나와 버린다. 왕년의 소장수 이도남 노인은 이런 상황을 ‘소장수가 버끔을 쳤다’고 설명한다.

버끔이란 남녘 사투리로 ‘거품’을 뜻하는데, 이렇게 되면 소 주인은 자신의 소가, 암만 못 해도 8만원 이상은 받을 수 있는 상품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니 뒤에 다른 소장수가 찾아온들 매매가 성사될 가망이 거의 없다. 아예 소를 못 팔아먹게 하겠다는…소장수의 고약한 심술이다.

소를 팔 때 높은 값을 받으려면 쟁기질을 잘 가르쳐야 했다. 보통의 소들은 한두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다음에는 주인의 명령에 순응하여 논밭갈이를 하게 되지만, 천성적으로 그것이 안 되는 소가 있다. 심한 경우 쟁기를 매단 채로 언덕 아래로 도망을 치는가 하면, 아예 멍에만 걸쳐도 뒷걸음을 치거나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리는 녀석도 있다.

“내가 웃마을에서 사갖고 온 소가 성질도 온순하고 쟁기질도 기가 맥히게 잘 하는디, 자네 집 소랑 바꿀 생각 없능가?”

이렇게 해서 교환이 이루어진다. 농부에게는 비록 웃돈을 얹어주는 부담이 있긴 하나, 성질 사나운 놈을 일 잘하는 놈으로 바꿔서 좋고, 소장수는 우시장에 가지 않고도 가욋돈을 챙겨서 좋다. 하지만, 수놈(황소) 중에 정말로 성질 사나운 놈을 만나면 소장수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날 소장수 이도남이 황소 한 마리를 두고 주인과 흥정에 들어갔다.

“앗다, 고놈 뿔 한 번 우람하게 잘 생겠다. 종자 분양해주고 돈 깨나 벌었겄구먼.”

“허허허, 사람이든 짐상이든 씨가 좋아야 돼. 우리 동네에 요놈 아들딸들이 쌔부렀당께.”

“발목도 튼튼하고, 엉덩이도 통통하고, 생긴 건 나무랄 것이 없는디, 너무 늙었네, 그랴. 어디 이빨 조깐 보자. 흐음, 동네 암소들한테 정기를 다 빼줘부러서 그란지, 나이보담 더 파싹 늙었구먼. 인자 기운이 다 빠져부러서 힘 못 써.”

소장수가 늘 하던 상술대로 트집거리를 만들어 읊어댔다. 하지만 둘 사이에 흥정꾼이 끼어들어서 결국 거래가 성사됐다. 이제 그 소를 몰고 옆 마을 객선머리(선창가)로 가면 된다. 소장수가 주인으로부터 고삐를 넘겨받았다.

“가자, 요놈아. 이럇!”

소장수가 고삐로 황소의 엉덩짝을 내려쳤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문제의 황소가 소장수 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억센 뿔을 그의 가슴패기에 겨누고서 돌진했다.

“으악! 사람 살려!”

소장수가 혼비백산하여 신을 신은채로 안방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주인이 껄껄껄 웃었다.

“그랑께, 왜 불경시럽게 늙었다느니 기운이 빠져부렀다느니 씰 디 없는 소리를 해싸. 요놈이 말여, 우리 동네 우공(牛公)들의 추장이여, 추장, 허허허….”

안방으로 들어가서 돌쩌귀를 붙잡고 있던 소장수가, 바깥사정을 살피려고 슬며시 문을 열었다가 화들짝 놀라서 다시 닫았다. 잔뜩 골이 난 황소가 툇마루에다 앞발을 터억, 걸친 채 방문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장! 저놈의 황소, 빨리 외양간으로 안 끗고 갈 것이여!”

주인은 그저 껄껄껄 웃기만 했고, 겁에 질린 소장수가 궁리 끝에 뒷문을 열고 도망쳤다. 황소가 사립을 향하여 위엄 있게 일갈하였다.

“움메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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