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도 사람 사는 곳이다

  • 입력 2017.06.23 13:41
  • 수정 2017.07.03 10:09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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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오전 9시, 정오, 오후 2시. 읍내에서 곡성군 겸면 상덕마을로 들어오는 공용버스 시간이다. 2시 이후로는 읍내로 나가는 버스도,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도 없다. 주민들은 늦은 오후에 한 대만 더 배차되더라도 읍내에서 일 보기가 한결 수월할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도시에서 누리는 다양한 행정, 교통, 의료, 편의 시설을 농촌에서 바라기엔 그 간극이 너무 크다. 사회구성원으로서 사람이 기본적으로 차별 없이 누려야 할 사항을 복지라 일컫는다면 농촌의 복지는 여전히 열악하다. 한승호 기자

충북 영동군의 한 면소재지 마을, 50년 넘게 약방을 운영했다는 주인 할아버지는 반창고를 산다는 핑계로 들러 질문을 던진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약방엔 그 흔한 반창고가 없어, 멋쩍었던 나는 필요도 없는 자양강장제를 두병 산 참이었다).

“응, 불편한 거 없는데? 우리 마을엔 없는 게 없어.”

내게는 애석하게도 아니었다. 조그만 반창고뿐만 아니라, 편의점조차 없는 면에는 없는 게 많았다. 군내 유일한 영화관과 도서관이 있는 12km 거리의 군청소재지까지 가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꼴. 영동역에 도착해서 돌아가는 차편의 시간표를 본 뒤엔 이 마을 배차 수가 영동군 내에서는 그나마 가장 많은 편이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막차가 저녁 8시도 안되어 출발한다는 것도, 이 2관짜리 조그만 영화관이 작년 말에야 정부 사업으로 겨우 생겼다는 사실에도.

지금 대한민국의 농업과 농촌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 세대의 노령화로 농사짓는 이는 계속 줄어가는데 지난 세대를 이어 농사를 짓겠다고 나타나는 젊은이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입을 감히 예상하지 못하는 점도 크겠지만, 이미 기존의 삶을 버리려 하는 이들에게 소득은 사실 제일의 고민이 아니다.

삼선복지재단이 지난 2015년 귀농자와 귀농희망자 1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귀농귀촌의 이유로 ‘고소득 농사’를 꼽은 인원은 7명에 불과했다. 과반이 넘는 선택을 받은 1등 답안은 ‘경쟁·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116명)’였다.

그런 젊은 세대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열악한 농촌복지가 아닐까. 기초적인 문화·여가 시설이 없고, 기본적인 이동수단조차 부족하며, 제도의 미비로 응급실과 같은 필수 시설조차 폐쇄되는, 시골에서는 ‘없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현실 말이다. 그러나 이미 도시의 삶을 겪은 사람들이 보기에 농촌은 ‘기본’이 돼 있지 않다.

여성의 경우엔 지금의 여성농민들을 보고 귀농귀촌이 더욱 꺼려질지 모른다. 이 농번기에 현 세대의 여성농민들은 힘든 노동과 더불어 식구들이 먹을 밥을 차려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며, 가계도 신경 쓴다. 아이들 교육을 돌보는 것도 대개 그녀들의 몫이다. 양성평등 시대를 맞아 이제는 농촌사회에서도 지난 세월 그들의 소리 없는 헌신에 대해 어떤 보상을 했는지, 미래를 위해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한 가지 희소식은 문재인정부가 일부 지자체의 모범 사례들을 국가적 농촌 복지 정책으로 추진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새 정부의 그 등을 힘껏 떠밀어주기 위해 <한국농정>은 커버스토리 연재기획 ‘새 정부 농정과제’의 마지막 주제로 농촌복지를 이야기해본다. ‘생존’을 외치기에도 목이 남아나지 않아 사람답게 사는 문제는 신경 쓸 겨를조차 없는 이 시대의 농민, 그리고 훗날 등장할 예비농민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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