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업의 기계화와 농민

  • 입력 2017.06.23 13:33
  • 수정 2017.06.23 13:36
  • 기자명 이춘선 전여농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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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가뭄이다. 들깨도 심어야 하고 마지막 남은 콩도 심어야 하는데 비가 오지 않아 심을 수가 없다. 저번 비올 때 심은 고구마는 그나마 생명을 부지하고 있지만 토종자조와 수수는 싹이 날지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속에서 이곳은 양파수확이 한창이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온 들판에 양파 수확작업 하는 인력들로 한산한 들판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다. 항상 장마시기와 겹치다 보니 온 들판에서는 양파작업 인력을 구하느라 난리였다.

농사는 때가 있는지라 인력을 구하지 못한 농가는 여기저기 부탁하느라 난리고 심지어는 용역을 통해 도시에서 인력들을 대형버스로 여기저기서 모셔오는 풍경이 벌어졌었다.

이쯤 되면 양파를 수확하는 인건비는 새참, 점심 등 포함해 여성들도 하루 일당 10만원을 훌쩍 넘어서기 일쑤였고 웃돈을 줘서라도 인력을 구해야 하는 농가들은 농촌 일삯은 양파농가가 다 올린다는 하우스 및 타작목 농가들의 따가운 눈총까지 받아야 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고령 여성농민들 조차도 품삯은 그야말로 금값이었다. 이때만은 죽은 송장도 일어나서 일해야 한다는 사람이 중시되는 시기였다.

그런데 올해는 상황이 달랐다. 그동안 시범사업 정도로만 그치던 양파 수확기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예전에는 많은 농민들이 순을 자르고 망에 양파를 담았다면 이제는 기계로 한순간에 양파줄기를 자르고 5~6명의 적은 인원으로도 하루에 수천평이나 되는 양파를 톤백에 넣는 것으로 순식간에 양파수확이 끝나버린 것이다.

올해 우리 면에서도 대규모 양파농가들은 대부분 양파수확 기계를 사용했다. 앞으로는 심는 것부터 수확까지 모든 것들을 기계로 한다고 하니 해마다 겪는 농촌일손 부족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일손부족에서 벗어나서 좋은 반면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드는 건 왜일까?

예전에는 씨를 뿌리고 키우고 수확하는 것까지 모든 것들이 농부의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됐다. 그만큼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은 생명을 뿌리고 거두는 귀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점점 더 농촌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되면서 인력은 없고 농업은 점점 더 기계화되고 빠르게 농민들의 손길이 줄어들고 있다. 논은 경지정리를 하면서 대부분 기계화가 돼 왔지만 밭은 아직도 많은 여성농민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

많은 농민들이 필요하던 농업은 어느새 적게는 몇 백만원 크게는 수천만원, 억대를 넘어가는 기계가 대신하면서 점점 더 기계에 의존하는 농업으로 변하고 있다. 이 속에서 농업정책도 점점 더 그 숫자가 적어진 농민들의 생존과 농업의 가치보다는 더 크고 좋은 상품으로 잘 포장해서 소득증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익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 농업 정책논리에 농업과 농민의 존재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요즘 농업정책은 농업을 유지, 발전 시키고 농민들을 육성하는 정책보다는 어떻게 하면 상품을 잘 포장해 도시 소비자들에게 잘 팔 것인가? 도시소비자와 함께 해야 하는 도농상생, 스마트 팜, 6차 산업, 4차 산업혁명 등 생소한 농업정책 단어들이 주가 되고 있다.

농민들을 1차 산업인 농업 생산에만 종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농업을 매개로 한 부수적인 산업에 더 많은 정책이 투여되고 있는 것이다.

농업은 이 땅을 지키고 종자를 지키고 대대손손 우리 후대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생명산업이다. 이 속에서 농민의 가치는 정말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농업정책은 농업과 농민이라는 근본적인 것에는 관심은 없고 잿밥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점점 더 농민들을 가장 많이 있어야 할 농업현장에서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생산보다는 가공, 가공보다는 유통, 농기업인, 이제는 더 나아가 첨단농업까지 농민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수출증대, 경제 활성화라는 대의에 농업은 당연히 희생돼야 하고 농민들은 농업의 주체로 성장하기 보다는 보호받아야 하는 불쌍한 존재로 비춰지게 하고 있다.

한국의 농업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는 대목이다. 이번 정부에선 지속가능한 농업과 그 주체인 농민을 위한 1차 산업을 중시하는 그런 농업정책이 수립되기를 촉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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