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기우 비나리

  • 입력 2017.06.23 13:27
  • 수정 2017.06.23 14:08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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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 (경남 김해)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은 이 땅에, 봄 가뭄이 극에 달에 여기저기 농민들의 신음과 원성이 온 들판을 덮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보릿고개 넘기조차 어려웠던 그 시절도 다 지나고 좀 살만한 세상인가 싶은데도 농민들 살림살이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질 게 없습니다. 

기술혁명, IT농업, 6차산업… 제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농사는 하늘과 농민들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분명한데 하느님이 노하셨는지 비를 아니 주십니다.

어쩌면 하느님께서 노할 만도 하다 싶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 해도 하루 세끼 먹는 것 까지 달라질 리는 만무한데 먹거리를 천대하고 농민들을 무시하니 뜨거운 맛 좀 보라하며 벌을 내리는가 봅니다. 그런데 참 애타게도 그 뜨거운 맛조차 농민들이 보게 됐으니 이를 어찌 하오리까? 

사람들은 도시에서 나고 자라고 생활하는 지라 촌살림은 아예 모르다시피 합니다. 요새 비가 좀 안 내린다고 언론에서 떠드니까 그런가보다 생각하지, 또 돌아서면 농촌에서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모릅니다. 멀찍이서 바라보는 농촌의 풍경은 그야말로 총 천연색 잡지 사진의 한 장면에 불과한 것이겠지요. 얼마나 발을 동동 구르며 논에 물을 대야 어린 모가 자라면서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알기나 하겠습니까.

물시설이 좋은 곳에서도 웃논에서 물을 먼저 대버리면 아랫논은 웃논 물대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데 기다리는 시간에 6월 폭염에 논이 더 빨리 마르니 마음조차 바짝바짝 마릅니다. 그러다 농민들끼리 언성이 높아지고 그 옛날처럼 보싸움까지 하는 판입니다. 아침 일찍 들에 나가면 저마다 논에 물을 대려고 사람들이 시장처럼 북적입니다.

물시설이 나쁜 곳은 아직 모내기를 시작도 못한 곳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따위 논들은 버리라고 하지만, 농민들 마음이 어디 그렇습니까? 남에게는 시시한 그 땅도 주인에게는 아픈 손가락이지요. 아픈 손가락이라고 잘라버릴 수 있나요? 물이 귀하면 귀한 대로 철따라 농사짓는 것이 농민의 성정인데 어찌 쉬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 할 말로 들녘 좋은 김제평야, 나주평야에서만 국민들이 먹는 쌀을 다 생산할 수 있나요? 강원도 경상도 그 산골에서도 물길 닿는 곳이면 논을 일궈서 모를 꼽아왔고 그 덕에 쌀만큼은 자급자족하는 것인데, 아직도 하늘 물 받아서 농사짓는 그 땅들은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애타는 과정을 뒤로한 채 차로 마주치는 들녘에는 이 가뭄에도 평온하기 짝이 없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비를 내리게 하옵시고 사람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물의 귀함을 깨닫게 하옵소서. 성장과 풍요의 시대에도 오히려 물 부족이 근원적인 사회문제가 된다는 자연의 엄중한 경고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더불어 사는 세상의 가장 중심에 농업이 있고, 사람과 환경이 상생해야 농업이 있다는 것, 모든 생명들이 공존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임을 안내하소서. 이 긴 가뭄의 시간이 그런 깨달음을 얻게 하시고 당장의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집중하게 하소서.

농업에서만큼은 경제가 아닌, 생명의 논리로 바라보게 하옵소서. 농민들에게도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게 하옵소서. 천지신명이시여, 푸른 들판에서 시커멓게 타 들어가는 농심을 굽어 살피시어 비를 뿌려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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