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 돌파구를 찾다

[연재기획] 우리 축산의 대안을 찾다
규모 작은 농가가 실현할 수 있는 ‘동물이 행복한 축산’
친환경축산물 판로 확보가 동물복지 소농의 생존 열쇠

  • 입력 2017.06.23 13:17
  • 수정 2017.07.31 17:51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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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우리의 축산은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공연한 수식어가 아니다. 가축질병, 수급불안, 무허가축사 적법화, 기업의 축산업 진출, 수입축산물의 거센 도전 등 만만치 않은 현안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급한 불을 끄는데 매달리다보면 등 뒤에서 태풍이 불어 닥친다. 축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왔다는 규모화, 산업화가 이제 축산농가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본지는 축종별 현안을 넘어 축산 전체를 아우르는 화두를 던지려 한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축산의 미래를 걱정하는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시도다. 일대 전환점을 맞은 축산이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혜안을 통해 대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2. 동물복지 대세라지만

① 소농, 돌파구를 찾다

② 도축장도 동물복지시대

③ 지속가능한 축산, 그 열쇠는?

④ 동물복지축산물 어떻게 만나나
 

[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돼지는 명아주를 제일 좋아해요.” ‘땅파는 까망돼지’를 생산하고 있는 법전농장 이민우씨의 딸 이수연양이 돼지에게 명아주를 먹이고 있다.

머루나무 밑에 살던 돼지는 땅을 파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배가 고프면 땅에 있는 풀을 뜯어 먹고 가끔 나무에서 떨어지는 머루도 먹곤 했다. 몇 십 년 전 이야기도 아니고 동화책 속 이야기도 아니다. 불과 2년 전까지 경북 봉화에는 머루하우스에서 살던 돼지들이 있었다.

봉화군 법전면 법전농장의 이야기다. 머루나무 밑 돼지이야기는 합법적 축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농장주 이민우(45)씨가 벌금을 내고서 끝이 난다. 이씨는 7년 전 도시 생활을 뒤로하고 귀농했다. 운 좋게 마음이 맞는 귀농자들을 만나 함께 <땅파는 까망돼지>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자연 양돈한 돼지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자연양돈을 하는 네 농가와 축사허가를 받지 못해 정육점을 운영하며 유통에 집중하고 있는 한 농가까지 포함해 다섯 농가가 합심하고 있다. “어차피 팔고 먹을 텐데, 가족같이 키운다는 말은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그냥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거죠.”

채식하는 ‘땅파는 까망돼지’는 명아주를 제일 좋아하지만 개망초도 선호하는 음식 중 하나다.

<땅파는 까망돼지> 농장의 돼지들은 채식을 한다. 여름에는 산야초를 먹고 겨울에는 볏짚을 먹는다. 아니면 직접 발효시킨 사료를 주기도 하는데, 재료는 쌀겨와 깻묵에 봉화 특산물인 사과의 즙을 짜고 남은 건더기 등이다. 이씨는 돼지들에게 발효사료, 신선한 풀, 볏짚 등을 고루주면서 돼지가 스스로 좋아하는 메뉴를 고를 수 있게 한다. 몸이 좋지 않거나 소화가 잘 안 되는 돼지는 단식을 택할 수도 있다. 이런 식단은 냄새나지 않는 축사의 비결이기도 하다.

이씨의 축사는 한 칸의 크기가 40m²다. 각 칸에는 비슷한 개월 령의 돼지가 4~5마리씩 살고 있다. 다른 돈사와 다른 점이라면 돼지들이 더 넓은 공간에서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쬐고 흙에서 뒹굴 수 있다는 것. 이씨는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은 것이 진정한 동물복지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암컷과 수컷이 교미를 하고, 여름엔 흙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더위를 식히고, 분뇨는 흙·깔짚과 함께 발효돼 돼지들의 푹신한 이불이 되기도, 간식이 되기도 하는 일들이다.

“지역에서 돼지 1만마리를 키우던 대형 축사가 하나만 문을 닫아도 100마리를 키우는 소농이 100곳은 생길 수 있죠.” 이씨는 동물복지, 나아가 자연농법을 통해 차별화된 축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축산의 규모화·산업화로부터 소농을 지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판매다. 친환경축산을 고수하는 농가, 특히 규모가 작을수록 판로확보가 절실하다. 제품이 팔려야 생산 활동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양축을 통해 생산되는 축산물은 품질이나 생산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 또 사육기간도 비교적 길고 현행 축산물등급제에서는 좋은 등급을 받기도 어렵다. 생산비는 많이 들고 생산량은 한정적이니 소비자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대외적으로는 안전한 먹거리로 인정받을 수 있는 해썹(HACCP)이나 동물복지 인증이 있다. 하지만 해썹은 수입곡물을 배합한 지정 사료를 꼭 먹여야하고, 동물복지는 지난해까지 최소 사육규모가 정해져 있어 소규모농가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땅파는 까망돼지>에 인증이 없는 이유기도 하다. 다만, 지난해 말 동물복지인증 신청자격에서 사육규모 제한내용은 삭제됐다.

가격은 비싼데 받은 인증이 없으니 소비자들에게서 으레 쏟아지는 문의, ‘인증이 없는데 친환경축산물 맞나요?’였다. 그렇다면,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농가는 판매가 잘 되고 있을까.

‘소소란’을 생산하는 농가들의 계사에는 황토와 짚으로 이뤄진 흙바닥, 장닭들이 홰를 칠 수 있는 횃대와 방해받지 않고 알을 품을 수 있는 산란상자까지 구비돼있다.
충남 서천 마산면에서 소소란을 생산하고 있는 박대수씨. 닭이 좋아하는 먹이에 따라 낳는 계란의 색도 달라진다.

<소소란>은 충남지역에서 자연양계를 하는 산란계 농가들이 생산하는 계란 브랜드다. 서천군 마산면에서 소소란을 생산하고 있는 박대수(45)씨는 “동물복지인증을 받았지만 그게 판매증가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면서도 “인증여부를 떠나 자연양축은 소농이 살아남을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자연양축도 판로확보가 돼야 지속할 수 있다. 자연양축 축산물은 일반 축산물보다 가격이 비싸다보니 판매량이 현저히 떨어진다. 직접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판매량이 꾸준하지 않다보니 오프라인 매장에 진출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동물복지, 나아가 자연양축 축산물의 판로 마련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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