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찍는’ 고된 노동 끝에 배추가 피다

극심한 가뭄 불구 정식 한창인 매봉산 고랭지배추단지

  • 입력 2017.06.16 14:36
  • 수정 2017.06.21 16:37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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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밭 사이로 배추 모종을 심었다. 토양이 촉촉해야 하건만 지속된 가뭄 탓에 언감생심일 뿐이다. 호스를 짊어지고 모종마다 ‘물을 찍는’ 작업은 그래서 중요하다. 뿌리가 완전히 내릴 때까지 농민들이 배추밭을 쉬이 떠날 수 없는 이유다.
110ha에 달하는 광활한 배추밭 곳곳에서 농민들은 배추 모종 옮겨 심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5월 한 달 간 태백 지역에 내린 비의 양은 14.4mm에 불과했다. 극심한 가뭄 탓에 농민들은 쾌청한 맑은 하늘을 보며 원망을 쏟아내야 했다. 절대적인 강수량 부족은 5월 하순부터 시작된 매봉산 고랭지배추단지의 배추 정식에 크나큰 악재였다.

국내 최대 여름배추 산지인 매봉산 배추단지에서 8월 출하를 기약하기 위해선 모종 심기는 6월 하순 전에 마무리돼야 한다. 해발 1,100m에서 1,300m를 아우르는 고산지대이기에 냉해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심는 시기를 더 늦출 수도 없다.

지난 12일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매봉산 고랭지배추단지에서 만난 농민들은 정식 초기 2주가 전쟁 같은 일상의 연속이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배추 모종이 밭에 안착할 수 있도록 급수차를 이용해 하루에도 5~6번씩 물을 주는 일과가 며칠씩 이어졌다.

허나 극심히 메마른 토양에 심은 모종은 누렇게 말라죽기 일쑤였다. 농민들은 죽은 모종을 걷어내고 다시 심었다. 밭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밭은 타들어 가는데 비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농사 실패에 대한 우려마저 일기 시작했던 때였다.

그러나 6월로 접어들며 상황이 조금씩 진전되고 있다. 가뭄 해갈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간간히 흩뿌린 비가 농민들의 걱정거리와 일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있다. 13일 현재까지 34.8mm의 비가 내려 약 110만㎡에 이르는 광활한 배추밭을 적셨다. 지난달에 비하면 말 그대로 가뭄에 단비다.

아직 흙먼지 날리는 황량한 배추밭에 불과하건만 잎사귀를 하나씩 펼쳐 녹색으로 물드는 밭이 하나둘 늘고 있다. 호스를 어깨에 짊어지고 드넓은 밭을 오가며 여전히 모종에만 ‘물을 찍는’ 농민들의 고된 노동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지고 있지만 정식 면적은 날이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초여름 햇볕이 뜨거웠던 이날도 배추밭 곳곳에서 농민 수십 여 명이 배추 모종을 심고 물을 주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정만(52) 태백매봉산마을영농회장은 “물을 대기 위해 백방으로 고생했던 지난달 말과 비교하자면 정식 면적이 많이 늘었다. 현재 약 60~70% 수준까지 완료된 상황”이라며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고 비도 더 와야지만 한 고비는 넘긴 것 같다”며 현황을 전했다.

덧붙여 이 회장은 “가뭄이 반복되는 등 기후변화가 잦아지면서 농사짓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며 “단기성 대책이 아닌 급수 시설 완비 등 밭 기반 정비사업의 실현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봉산 고랭지배추단지의 수확기 생산량은 5톤 트럭으로 2,000대 분량에 달한다. 약 600만 포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올 여름, 속이 꽉 차며 무르지 않고 아삭아삭한 식감의 배추를 맛보거든 가뭄을 기어이 이겨내고 잎을 피어낸 국산 고랭지배추의 힘을 기억해주시라. 그 이면에 깃든 농민들의 헌신적인 수고로움과 애달픔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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