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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칼럼] 위기는 누구에게 기회인가?

[최용혁(충남 서천)]

최용혁(충남 서천)

분명, 벌칙은 운동장 100바퀴 돌기였다. 젖 먹던 힘까지 쏟아 부어 마지막 100바퀴째를 다 돌고 이제 쓰러지려는데, “한 바퀴 더!”라는 구령과 함께 계절은 어느덧 겨울, 봄을 지나 여름이 됐다. 그리고 AI는 한여름에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재난의 한쪽에서는 항상 ‘이번만 잘 버티면 좋아질 것이다’ 또는 ‘이 위기를 잘 관리하면 기회가 올 것이다’는 달콤한 거짓말들을 속삭인다. 대부분의 가족농이 그렇듯이 손바닥 손금 들여다 볼 정도의 빤한 규모에서 눈앞의 작은 이해가 무슨 기회씩이나 되겠는가? 무엇보다 동지와 동료와 동업자들의 고난 중에 그들의 손실을 내 이익의 기대치로 보는 인식이 불편하다.

 

단, 지금껏 한 번도 말을 걸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어떤 시스템’에게 조심스럽게나마 말을 걸어 볼 여지가 생겼다는 정도를 기회라고 한다면 백번이고 인정한다. 충격의 여파로 대화의 문이 조금 열린 것이다. “지금까지 하라는 대로 해 왔는데 말입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요?”,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대량생산, 위해요소 관리, 사육방식 체계에도 어떤 책임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는 정도의 말을 걸어 본 것 정도가 상당히 고무적이다. 하지만 어떤 결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이때다’ 하고 어설프게 덤벼들었다가는 본전은커녕 밑창까지 탈탈 털릴 수도 있다. 시스템은 절대 관대하지 않다. 좋은 예가 있다. 얼마 전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고 키워보겠다’는 약칭 ‘안아키’라는 카페가 주목을 받고 된서리를 맞은 적이 있다. 5만여명의 엄마들이 회원이었다면, 카페의 내용을 떠나 엄마들의 어떤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병원으로 대표되는 의료 체계, 의료 행위, 의사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불신이 있었을 것이다. 기존 체제의 대응은 간단했다. 엄마들이 듣고 싶었던 어떤 설명도 불필요했다. “내 아이를 보균자와 함께 키워?”하고 윽박지르며 몇 장의 선정적인 사진들을 문제 삼는 것으로 간단하게 박살을 내어 버린다. 그러니 “왜 안 돼?”, “왜 그렇게 해야 돼?”, “왜 너희들 방식대로 해야 돼?” 하는 질문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괜히 정도를 넘어 성질을 돋우는 순간, 열린 문 밖으로 “내 말 안 들으면 다 죽어!”하는 익숙한 벼락이 쏟아진다. 그러니 차라리 눈앞의 몇 푼을 기회로 생각하고, “땡 잡았다” 좋아해 주는 게 고수의 처세술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위기는 분명, 기회가 맞다. IMF 시절 손수건으로 꼬깃꼬깃 싸 놓은 돌반지까지 국가에 바쳤던 사람들을 비웃으며 눈치껏 당겨 놓은 달러 장사에 바쁜 인간들도 있었고, 실직과 폐업의 눈물이 바다를 이룰 때 비정규직 천만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팡파르를 불어 댄 인간들도 있는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재미를 보았던 인간들은 특별방역대책 기간 동안의 특별한 위기를 다시 어떤 기회로 만들어 낼 것인가? 새로운 대통령이 단호하게 제시한 AI 근본대책 수립에서 이들의 몫은 얼마나 더 커질 것인가? 농민의 한숨과 국민의 불안을 빌미로 어떤 반지르르한 대책을 제시할 것인가? 2017년 농업계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바야흐로 우리집 앞마당에서 키우는 닭 대여섯 마리가 낳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계란’과 영영 작별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서막을 알리는 징조이겠지만, “그거 몇 푼이나 된다고!”하는 세련된 일갈에 맞설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다시 재발한 조류독감이 소규모 농가들 속을 전전하고 있어 더욱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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