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의 죽음, 진실이 다가온다

서울대병원, 선종 9개월만에 병사 → 외인사로 수정 … “외압은 없었다”
서창석 병원장은 침묵 … 당시 주치의 백선하 교수 입장엔 변함 없어

  • 입력 2017.06.15 20:59
  • 수정 2017.06.16 16:01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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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서울대병원 의료윤리위원회 위원장(진료부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임상강의실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사망 관련 언론설명회’에서 사망진단서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하는 입장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김연수 서울대병원 의료윤리위원회 위원장(진료부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임상강의실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사망 관련 언론설명회’에서 사망진단서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김연수 서울대병원 의료윤리위원회 위원장(진료부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임상강의실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사망 관련 언론설명회’에서 사망진단서의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하는 입장을 발표한 가운데 강의실 입구에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들이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1월 6일 고 백남기 농민의 영정사진을 든 유가족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노제를 지내기 위해 고인의 보성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병사’로 기록됐던 고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선종 9개월만에 외인사로 다시 수정됐다. 유가족은 외상에 의한 사망을 인정받음에 따라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향해 한 걸음 더 나가게 됐다. 한편 서울대병원은 여전히 외압에 의해 진단서를 기록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양새다.

지난 15일 오후 기자간담회를 연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9월 25일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에 기록된 사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했다고 밝혔다. 직접사인은 심폐정지에서 급성신부전으로, 중간사인은 급성신부전에서 패혈증으로, 선행사인은 급성경막하출혈에서 외상성경막하출혈로 바뀌었다.

이는 지난 1월 유가족이 서울대병원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및 사인 정정 청구 소송에 대응한 결과로, 병원 측은 사태의 근본적 해결과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전공의의 보호를 고민한 결과 병원 차원에서 적극 개입하기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김연수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은 이 자리에서 “서울대병원이 지난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국민에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다”면서도 “제도가 이런 현실에 대처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과 번뇌가 있었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김 부원장은 “이처럼 의사 개인의 판단이 전문가 집단의 합의된 판단과 다를 경우 어떻게 조율하고 행동해야하는 지 어려움이 있다”면서 “서울대병원은 의사의 집단 지성과 경험을 반영할 수 있는 ‘의사직업윤리위원회’를 만들어 앞으로 이와 같은 상황 발생 시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병원의 행보에 관심 가져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서울대병원 측 관계자들은 당초 기자간담회를 짧게 마치려 했으나 ‘기자회견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이 자리가 신뢰 회복을 위한 충분한 노력을 담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기자들의 질책에 어쩔 수없이 자리에 더 머무는 모습을 보였다.

정권 교체나 감사에 영향을 받아 사인 수정을 결정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에 대해서 병원 측은 “1월부터 논의가 되고 있던 것으로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다”며 부인했다. 사인 수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에 대해서는 “의료계 특성상 500명에 가까운 교수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공식 입장을 내는데 시간이 걸릴뿐더러, 진단서를 작성한 전공의와 도제 관계인 백선하 교수가 4월까지 함께 근무했기 때문에 전공의 보호 차원의 이유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사인을 병사로 기록한 이유에 대해서는 “외상이 발생했던 환자라도 치료기간이 길어지면 결국 병사로 기록되는 일이 허다한 것이 의료계의 현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당시 ‘병사’ 사인 기록에 있어 어떠한 외압도 없었으며 동료인 백선하 교수가 영향 받을 인물도 아니라고 두둔했다.

당시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는 여전히 사인이 심폐정지에 의한 병사라는 생각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창석 병원장은 이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그 입장도 공개되지 않았다.

유가족과 백남기투쟁본부는 발표 직후 성명을 내 “너무나 당연한 일이 늦게나마 이뤄져 다행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이제 너무나도 명백한 사망원인을 왜 병사로 기재하게 되었는지 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며 “고인과 유족, 모든 국민들께 감사를 드리며 향후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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