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수 - ① 섬마을 소장수

  • 입력 2017.06.11 22:30
  • 수정 2017.06.11 22:3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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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른 아침, 농부가 쟁기로 밭을 간다. 밭이랑의 맞은 편 끝자락은 안개에 싸여 가물거리는데, 그 사래 긴 밭을 다 갈자면 하루해가 짧다. 쟁기 손잡이와 소고삐를 양손에 나눠 쥐고 이랴, 자랴, 잰걸음을 종종거리는 농부의 베잠방이는 벌써 이슬에 함빡 젖었다. 밥 소쿠리를 머리에 인 아낙이 밭머리에 들어서고…이제 이런 농촌의 아침풍경은 풍속화를 그리는 화가의 화판 속으로 옮아가 버렸다.

아직도 쟁기질을 하는 농가가 더러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경운기며 트랙터 같은 농기계들이 소가 하던 일을 대신하게 되면서, 경작을 돕는 농경 동반자로서의 소는 사라지고, 고기를 얻기 위한 이른바 비육우만이 환영받는 세상이 되었다. 사육 형태도 개별 농가에서 한두 마리씩 키우던 방식에서, 대규모 농장에서 집단 사육을 하는 쪽으로 바뀌었고….

옛 시절, 남해안의 이 마을 저 동네를 돌면서 소를 사다가 육지의 우시장에 내다 팔던 ‘섬마을 소장수’를 탐색해 볼 것이다.

내가 태어난 생일도라는 섬에서 윗녘으로 나아가자면 겸능호, 혹은 대진호 등의 객선을 타고 강진군의 마량포구나 장흥군의 회진포구로 일단 건너가야 했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의 여름방학 때였을 것이다. 이웃 섬인 평일도의 외갓집에 다녀올 일이 있어 그 배를 탔다. 지금이야 어느 섬이든 선착장 시설이 잘 돼 있는데다 여객선도 카페리 형이라 접안하고 출항하기가 수월하지만, 당시만 해도 객선(본선)은 바다 저만치에 통통거리며 떠있고, 조그만 종선(從船)이 사람이나 짐을 실어 날랐다.

그 날 난, 배 시간에 급히 맞추느라 서두르는 바람에 아침에 치러야 할 행사를 건너뛰었다. 몇 번 승선해본 적이 있어서 갑판 한 귀퉁이에 변소가 있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다. 고의춤을 부여잡고 객실을 나섰는데 문제가 생겼다. 하필이면 소 두 마리가 변소의 문짝을 가로막고 서 있었던 것이다. 그 중 한 마리는 눈매에 몽니가 잔뜩 서려있는 황소였다. 잘 못 접근했다가 녀석의 뒷발에 차이기라도 하면 외갓집이고 뭣이고 황천으로 가야 할 것이다. 주춤주춤 다가가서는 황소가 궁둥이를 옆으로 조금 비키는 그 틈을 노려서 날랍게 변소로 들어가는 데에 성공했다.

그런데 변소에서 나가는 것도 문제였다. 문짝을 밀어봤지만 황소의 엉덩이에 막혀 좀처럼 몸뚱이를 빼낼 틈을 만들 수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변소문짝을 있는 힘껏 내찼고, 놀란 황소가 저만치 비켜났다. 후다닥 뛰쳐나왔는데 아뿔싸, 그 사이에 나만 용변을 본 것이 아니라 황소 녀석도 갑판 바닥에다 일을 치른 것이다. 얼결에 나의 깜장 고무신 한 짝이 푸짐하게 싸질러놓은 쇠똥 무더기에 박혀버렸다. 그 모습을 객선의 2층 난간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허허허, 고놈 참…. 자알 했다! 아침에 쇠똥 밟으면 재수 좋다고 안 하드냐.”

언젠가 소를 사러 우리 마을에도 다녀간 적이 있어서 얼굴이 설지 않은 바로 그 소장수였다.

‘재수 없이….’

난 쇠똥무더기에서 고무신을 꺼내 들면서 2층을 향해 적당히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 이 사람이 바로 1960년대 이후, 순전히 남해안의 섬마을만을 돌아다니며 30여 년 동안 소 장사를 해온 이도남(2001년 당시 67세) 노인이다.

꼬맹이 시절 외갓집으로 가는 여객선에서 썩 불유쾌하게 마주쳤던 왕년의 그 소장수 노인을, 삼십 몇 년 만인 서기 2001년도에 강진의 자택에서 만났다.

“진주, 음성, 함평, 영산포…우시장으로 전국적으로다 명성을 날렸던 곳이여. 장이 열리면 수백 마리에서 많게는 천 마리도 넘게 시장판으로 나왔당께. 나는 주로 장흥, 강진, 보성, 고흥…이런 데 있는 우시장에서 소를 거래했제. 그 시절 얘기를 해달라고? 아이고, 할 말이야 징하게 많제. 정 듣고자프면…막걸리 한 잔 사 줄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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