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27] 벌들에게 물어봐

  • 입력 2017.06.10 14:35
  • 수정 2017.08.25 12:08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꽃에 비해 열매가 훨씬 적게 열렸다. 친환경농사란 벌들에게 왜 수정을 못 시켰느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지난해 식재한 알프스 오토메가 왕성하게 가지와 잎을 키우더니 봄이 되자 많은 꽃을 피웠다. 지난해 여름부터 꽃눈이 잘 형성됐고 적당히 동계 가지치기도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2년차지만 금년에는 과일을 조금이나마 딸 수 있으리라 기대가 됐고, 주위 농민분들도 나무 상태가 양호해 그럴 것이라고들 해 나는 꽃필 무렵부터 기분이 좋았다. 원래 3년차는 돼야 수확이 어느 정도 가능한데 나무를 잘 키웠기 때문이라 하니 괜히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꽃이 핀 것에 비해 열매가 생각보다 훨씬 적게 열렸다. 어떤 나무는 아예 열매가 하나도 없는 것도 있고 너댓개밖에 열리지 않은 것도 있었다. 조금은 의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2년차이니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사 많이 달리면 어차피 적과를 해줘야 하니 아예 잘됐다라고 혼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기술센터 앞의 사과 농장을 가 보았는데 그곳 또한 열매가 드문드문 열려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웃 사과농장에도 열매가 거의 열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이건 우리 농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지역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저곳 문의해 보았으나 정확한 원인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몇 가지 의심이 가는 부분을 정리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수정해야 하는 시기에 바람이 너무 세게 불었기 때문 아닐까’ 하는 추정이었다. 양양과 강릉사이에 부는 봄(4월~5월) 바람을 양강지풍(襄江之風)이라 하는데 옛 문헌에도 나올 정도로 유명한 바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그러나 이 추정이 맞다면 지난해에도 열매가 많이 맺히지 말았어야 하나 지난해는 또 많이 열렸기 때문에 바람 때문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두 번째로 추정되는 요인은 벌의 활동이 기후 환경의 변화로 매우 미약해 수분 활동을 왕성하게 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꽃이 피었을 때 아랫동네의 꿀벌들이 많이 날아왔던 것 같은데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 정도의 벌들로는 부족한 것인지의 여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현재로선 그 정확한 원인을 알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꽃은 피었으나 수정이 잘 안된 것이니 천상 벌들에게 물어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왜 수정을 못 시켰느냐고….

친환경을 비롯한 모든 과수농사가 어려운 것은 벌레와 균들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내년에는 붓을 들고 일일이 인공수정을 해줘야 할 것 같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