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돼지분뇨가 삼킨 그들의 땅

[르포] 홍천군 화촌면 송정리 만내골
주민대책위, 돼지농장 주변 구덩이 파 ... 오염된 지층 및 침출수 드러나

  • 입력 2017.06.08 14:32
  • 수정 2017.07.03 10:2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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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현장에 도착한 기자를 가장 먼저 반긴 것은 사람이 아니라 파리였다. 타고 온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범퍼에는 금세 두세마리의 파리가 자리를 잡았다. 농장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역한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올해 4월 18일, 돈사로부터 퍼져 나오는 악취를 30년간 참다가 노승락 홍천군수를 항의 방문했던 만내골 주민들은 군의 미온적인 대처에 깊이 실망하고 강한 행동에 나섰다. 만내골주민대책위원회 이제국 위원장은 자비 150여만원 을 들여 지난 2일 돼지농장 주변으로 깊이 4.5미터의 거대한 구덩이를 팠다. 구덩이는 오염되어 새카맣게 변한 지층과 갈색의 침출수를 머금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30년간 참은 악취

골짜기에 위치한 이 마을은 산 사이로 부는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바뀌었다. 돈사 쪽으로 바람이 불 때면 살만하다가도 방향이 바뀌어 돈사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는 견디기 힘들었다.

골짜기를 따라 난 도로 위 드문드문 위치한 집들의 창문엔 하나같이 비닐이 씌워져 있었다. 악취를 막기 위해 집을 통째로 밀폐시켜버린 것이다. 주민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환기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였다. 그 상태에서 살충제를 뿌리고, 가스레인지를 켜고, 청소를 한다.

“기자님은 그 냄새를 잘 모를 텐데, 제대로 한번 맡으면 정말 기절할 정도요. 지금은 파리도 거의 없는 거야.”

이곳에서 오랫동안 산 주민들은 하나같이 이 정도만 돼도 살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말 심할 때는 밖에 서 있을 수조차 없어 아예 마을 바깥으로 피신한다고. 주민대책위가 일을 벌여 시끄러워지고 난 뒤, 농장 측에서 무슨 조치를 했는지 모르지만 일단 냄새와 파리가 많이 줄었다고는 한다.

이날 해질 무렵이 되자 지상파 아침 방송의 취재진들이 만내골을 찾아왔다. 이 위원장은 취재협조를 위해 시간을 정해두고 주민들을 모이게 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그 무렵 거짓말 같이 악취가 멎었다.

“저기 봐요. 쟤네 환풍기 껐네.”

한 주민의 말에 언덕 밑으로 보이는 돈사들을 살펴보니, 오후 내내 돌아가던 외벽 상부의 환풍기가 꺼져 있다. 언론의 발길로 마을이 다시금 시끄러워지자 농장 측에서 꺼 버린 모양이었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송정리 만내골마을에 위치한 한 돼지농장 주변. 지난 2일 마을 주민들이 굴삭기를 동원해 돈사 주변을 파 내고 오염된 토양과 침출수를 확인했다.

단순 냄새 문제를 넘어섰다

그러나 만내골에는 악취보다도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구덩이 옆에는 굴삭기가 파내 쌓아 둔 흙더미와는 색이 다른 짙은 더미가 하나 더 있었다.

“잣 껍데기야. 저기다 돼지 분뇨를 부어서 찌꺼기는 거르고 액만 땅에 스며들게 한 거지.”

바로 옆에 고여 있는 침출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잣 껍데기는, 항상 돈사 옆 부지에 산처럼 쌓여있었다고 한다. 주민들 다수의 증언에 따르면 농장주는 잣 껍데기 더미에 분뇨를 버린 게 아니냐는 자신들의 추궁에 결국 사실을 인정했다고 한다.

정말이라면 농장주는 축산 분뇨 처리에 있어 심각한 불법 행위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상수도가 연결되지 않아 지하수를 식수로 이용하는 대부분의 마을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 것이다. 

지난 4월 농장 주변에서 채취한 시료의 수질 검사 결과, 먹는 물 기준치보다 최대 294배가 높은 암모니아 질소가 검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현장에서 접촉한 농장 관리인은 잣 껍데기 더미에 대해 ‘분뇨와 섞어 퇴비를 만드는 용도로만 쓰였다’는 전혀 다른 답변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소화능력에 의심을 가진 적이 없는 사람인데, 여기 와 살면서부터 때때로 속이 메스껍고 그러더라고. 그러다 저거 파낸 걸 봤는데...”

지난해 12월 만내골로 귀농한 임모씨의 경작지는 돈사 바로 옆이다. 그동안 지하수를 마셔온 그는 진상을 알기 위해 굴삭기가 자신의 경작지를 헤집어 놓는 것을 허락했고, 그렇게 마주한 진실은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생수를 사서 마신 뒤로 증상이 많이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분뇨수거차량이 농장에 오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한 그는 그동안 참았지만 사실 확인이 됐으니 이제는 더 이상 가만있지 않겠다고도 덧붙였다.

농장 옆에 쌓인 잣 껍데기 더미. 주민들은 농장주가 돈사에서 나오는 분뇨를 이 위에 부어 땅에 스며들게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굴삭 작업도 잣 껍데기 더미 옆에서 이뤄졌다.

“원상복구될 때까지 싸운다”

싸움에 나선 이들이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홍천군은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농가에 행정 조치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그 정도로 끝낼 일도 아니고 지금 해서도 안 됩니다. 어디가 새는지, 대체 오염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명백하게 밝혀야 합니다. 100만원을 훔쳤는지, 1,000만원을 훔쳤는지 확인을 하고 처벌을 해야죠. 농장이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아 주민들이 빼앗긴 깨끗한 공기와 물, 땅은 한 곳도 빠짐없이 완전히 복구돼야 합니다.”

마을 주민들은 올해 초부터 주민대책위원장을 맡아 적극적으로 항의에 나서고 있는 이제국씨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노인들인 이곳에서 그는 무기력했던 마을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어머니가 사는 이곳에 호두나무를 심으러 왔다가 주변 지하수가 다 썩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씨는 주민들과 홍천 지역의 시민운동가들을 규합해 언제 끝날지 모를 긴 싸움에 뛰어들었다. 

그는 왜 주민이 직접 땅을 파고 실상을 보여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지금까지도도 현장에 나와 보지 않는 홍천군수를 비판했다. 그는 이번 일이 잘 해결되어 홍천군이 살기 좋은 청정 지역으로 발돋움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시민사회활동가인 홍천군민 정민경씨 역시 자기 일처럼 나서 만내골을 돕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주민들을 대신해 홍천군청에 최초로 민원을 제기하고, 지금도 계속 현장과 군청에 방문하고 있다.

“밖에서 볼 때 저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와 주민들은 절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이 문제가 만내골과 홍천군에 국한되는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전국의 축산업자들이 좀 더 경각심을 갖고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례로 만들겠습니다.”

만내골에 위치한 한 주택 창문에 감싼 비닐. 이곳에 사는 김영준씨는 "이 근처도 지나갈 때 아는 사람은 다 창문을 닫고 지나간다"며 "이래서야 자식들도 오려하지 않고 친구를 부르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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