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잡이 ⑤ 항구에 고래 들어오던 날

  • 입력 2017.06.05 00:11
  • 수정 2017.06.05 00:13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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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바다에 나간 포경선이 대형고래를 옆구리에 달고 항구로 돌아가고 있는 그 시각에 포경회사 주인 즉 선주는, 자신의 배가 횡재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당시만 해도 연락을 주고 받을 통신수단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육지에 있는 선주들은 배가 언제 들어올 것인지조차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갑판원! 깃발 올려라!”

“어느 깃발을 올릴까요?”

“있는 대로 다 올려라!”

멀리 장생포항이 보이면 포경선에서는 깃발을 올리고 고동을 울린다. 포경선마다 선주와 선원 사이에 나름의 신호방식을 따로 정해두고 있었다. 길게 두 번 짧게 한 번 울리면 누구네 포경선이고, 혹은 짧게 두 번 길게 세 번 울리면 누구네 포경선, 하는 식이다.

장생포 사람들은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옛 시절을 회상할 때면, 포경선이 뱃전에 고래를 매달고, 깃발을 펄럭거리면서, 힘차게 고동을 울리며 항구로 들어오는 바로 그 장면부터 떠오른다고 했다.

고래를 잡았다는 신호가 확인되면 항구 일대가 부산해진다. 인근 동네 사람들이 꽹과리를 들고 나와 한바탕 굿판을 벌이고, 고래 해체장(일명 ‘고래막’)에서는 해부장(고래 해체를 지휘하는 ‘큰 칼잡이’)을 중심으로 작업준비에 돌입한다.

항구에 도착한 고래는 기중기에 의해 일단 바닷가의 고래막으로 옮겨진다. 그러나 곧바로 해부작업에 들어가는 건 아니고, 먼저 포경조합이 주관하는 해당 고래에 대한 입찰이 진행된다. 중간 상인이 고래를 낙찰 받으면, 포경선의 선주와 선원들은 고래를 통째로 낙찰자에게 인계하고서 임무를 마친다.

해체작업을 시작할 때쯤이면 장생포 주민들 뿐 아니라 울산시내 사람들까지 소문을 듣고서 고래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집채만한 고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포경선 포수하고 선원들 어데 갔노! 고기 갖고 가이소!”

고래를 잡아온 포경선의 선원들이 가장 먼저 일정량의 고기를 배당받는다. 그들뿐이 아니라, 구경나온 동네 사람들도 누구나 고기 한 덩이씩을 얻어갈 수 있었다.

구경꾼들에게 얼마씩 나눠 준다고 해봐야 크게 손해나지 않을 만큼의 미미한 양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60년대 당시에 고래고기 인심이 그렇게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 때만 해도 고래고기의 소비자들이 얼마 되지 않았고, 더구나 외국으로의 수출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땐 경상도에서도 부산, 울산, 구룡포…요 지방 사람들만 고래를 먹었어요. 대구만 가도 고래 고기 먹는 사람이 없었다니까.”

포경선 포수 출신 김해진 노인의 회고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냉동 보관할 만한 시설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체한 당일에 고기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항구에 고래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지면, 고래고기를 조금씩 받아서 5일장을 돌아다니면서 행상하는 여인들이 고래막으로 몰려오기도 했는데, 그들은 고기를 상하지 않게 가져가기 위해서 아예 현장에서 가마솥을 걸어놓고 고기를 삶기도 했다.

1969년도에 장생포에 처음으로 고래잡이용 철선이 등장했고, 70년대에는 대부분의 포경선이 철선으로 바뀌었다. 철선은 크기가 목선의 두 배나 되었고 속력 역시 훨씬 빨랐다. 게다가 고래가 싫어하는 음파를 물속으로 쏘아 보내서 자맥질한 고래가 곧 수면위로 뛰어오르게 한 다음 추적해서 포획을 하는 등, 포경의 방식부터 달라졌다.

또한 70년대부터 일본 수출길이 트이면서 60년대와는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포경선원들의 소득도 증가했다. 고래 값이 열 배나 뛰었던 것이다. 그래서 60년대엔 “장생포에서는 개도 고래고기를 물고 다닌다”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70년대에는 “장생포에서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로 바뀌었다.

그러나 남획의 대가는 그 충격이 컸다. 국제포경위원회가 1985년부터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 포경금지를 선포한 것이다. 머리가 허옇게 샌 왕년의 명포수 김해진 노인의 방에는, 옛 시절 거대한 참고래를 잡던 모습이 사진으로 걸려있었다. 전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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