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그런데 농업은요?

  • 입력 2017.06.05 00:10
  • 수정 2017.06.08 17:37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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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구점숙(경남 남해)]

구점숙 경남 남해

1993년도이던가, 김영삼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지 않던 날, 등록금을 대주던 큰 오빠가 집에 와서는 “요새도 데모하는 사람들이 있나? 야당출신 김영삼 대통령이 다 알아서 할텐데”라고 다소 빈정대듯 말을 했습니다. 당시 대학 졸업반이었던 나는 여전히 공부나 취직에 관심이 없던 터라 오빠 입장에서는 걱정이 앞섰던 것입니다.

한데도 그 말이 어찌나 서운하던지, 그렇다고 따박따박 대응을 하기에는 나의 논리도 부족했고 또 학비를 지원해주는 오빠와의 관계도 있었으니 아무 말도 못 한 채 뒤돌아서서 훌쩍거리기만 했었습니다. 그러고는 결혼하고 농사짓고 살면서 간혹 만나 농업이나 시사얘기를 나눌라치면 오빠는 중도 우파적인 입장이어서 간혹 부딪힐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진보적인 철학과 경제에 관한 책을 오빠 집에 갖다놓기도 하며 서로의 시각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오빠가 얼마 전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요즘 준비된 대통령 덕에 나라가 나라다워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네. 대기업 다니는 사람은 정치이야기 안 하는 것이 불문율인데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단다.” 길게 산 인생도 아닌데 4반세기 사이 한 사람의 생각이 많이도 바뀌었습니다.

오빠 집에 갖다 준 두 어 권의 책 때문만은 절대 아닐 것이고, 아마 오빠도 아이들을 키우고 직장생활하며 이름값 하고 살기가 많이 버거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새 대통령의 시책과 인사를 보며 새로운 기대감에 문자로 연통을 넣어온 것이겠지요. 

어디 오빠만 그러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세우기에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올라 있겠지요. “그런데 농업은요? (이 짧은 질문은 어쩐지 누군가의 말투를 흉내 낸 듯해서 꺼림직 하다만)”라고 묻고 싶습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엄두가 안 나는 이 나라 농업에 대해서 새 대통령은 아직 이렇다하는 말이 없습니다.

농사환경은 급격히 악화되고 최근에는 기후변화까지 겹쳐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는데도 농산물 값은 바닥을 치고 있으니 농민들은 불안정한 생활과 만성불안으로 행복지수도 바닥입니다.

모르기는 해도 새 정부의 성격은 딱 두 가지의 정책으로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농업과 노동정책입니다. 국민들의 피부에 가장 와 닿는 실질적인 삶의 문제와 직접 연결되는 부분이니까요.

국방이나 외교, 교육 등 정부의 모든 부처의 정책을 잘 세우고 집행해야겠지만, 그 부분은 일정 생각을 조정하는 문제이니만큼 정부가 가진 힘만큼 해낼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농업과 노동정책에 있어서만큼은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니 정부가 균형 잡힌 생각을 가지고서 제대로 조정해내야만 국민들의 피부에 ‘바뀌어가는구나’라는 느낌이 제대로 와 닿을 것입니다.

국민의 손에서 탄생한 새 정부이니 만큼 이름값 하는 정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해도 농민들은 개혁적인 정권하에서 가장 큰 시련을 겪은 경험이 있는지라 반신반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더 큰 목소리로 농민들의 요구를 주장해야 하겠지요. 자랑 같지만 그런 것은 또 여성농민들이 잘합니다.

마을대동회의 자리에서도 대찬 여성들이 뒷말보다 앞말을 제대로 해서 일을 올곧게 만들어 내는 경우가 흔히 있잖습니까? 

한-미 FTA 협상이 한창 진행될 때의 일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농민단체장들을 모아놓고 농업현안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말이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지, 실은 대통령이 농민단체장들에게 대통령의 생각을 주장하는 모양새가 되었나봅니다. 이때 경상도 아지매가 손을 번쩍 들어 “대통령님예, 농민도 말 좀 하입시더”라며 현 농업상황의 절박함을 전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때 말씀을 하던 경상도 아지매 여성농민단체장도, 듣던 대통령도 이제 고인이 돼 전설이 됐지만 여성농민의 기세와 당당함은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명분이 있으면 곧바로 움직이는 직선의 힘이 있다는 것이지요. 새 정부가 정부부처 조각을 하는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말할 때인 듯싶습니다. 그런데 농업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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