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모내기 삼매경

  • 입력 2017.06.04 23:53
  • 수정 2017.06.04 23:59
  • 기자명 이대종(전북 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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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종(전북 고창)]

이대종(전북 고창)

요사이 내 사는 곳 농민들은 모내기 삼매경. 온갖 잡념, 시름도 분노도 계산도 사라진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저 어린 모가 꽂혀 한들한들 춤추는, 푸르게 변해가는 들판이 대견하고 흐뭇할 뿐. 그러니 삼매경이다. 인력난에, 여지없는 봄 가뭄이 심각하지만 이미 일상사. 눈치 빠르고 말없는 동남아 친구들이 모쟁이를 대신하고 먼지 풀풀 날리는 들길 따라 들밥이 배달된다.

객멕이를 부르는 늙은 농부의 손짓도, 노총각들의 실없는 농담도, 아짐들의 왁자한 웃음도 사라진 들녘엔 엔진 소리만이 부산하다. 벌컥벌컥 들이킨 쏘맥 댓잔에 얼근해져도,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이앙기만 방향을 잃지 않으면 된다. 모내기니까…

 

세상사 어찌 돌아가는지… 청와대? 총리? 국회? 니까짓것들이 모 한포기 꽂아봤어? 비몽사몽 눈 감았다 뜨면 다시 아침, 오늘도 이렇게 모내기는 계속된다. 이처럼 모든 것을 잊고 신들린 듯 모내기에 전념하는 농민들은 무엇을 바랄까? 농민들이 흘리는 땀과 노고에 세상은 어찌 답해야 하나?

올 가을 또다시 빈 손 가득 울분과 분노만을 움켜쥐게 될, 그럴 것이 불을 보듯 뻔한 농민들을 위해 새 정부는 뭔가를 준비하고는 있는 걸까? 우리 농민들은 뭔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농업에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그 뭔가에서 가장 우선시되고 직접적인 것은 정부 정책변화에 대한 갈망이다. 뿌리로부터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 농업 회생은 불가능하다.

새 정부가 새로운 기틀을 세우는 지금이야말로 근본적 변화를 시도할 적기가 아닐 수 없다.

새 정부의 첫 단추, 이낙연 총리의 취임 일성이 ‘촛불혁명의 명령’이었다 하니 기대를 가져봐도 되는 걸까? 촛불혁명의 한복판에서 전봉준투쟁단의 이름으로 싸운 농민들의 주요한 기치는 ‘농업적폐 청산'이었음을 상기할 일이다.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쌀값 대폭락을 불러온 이명박근혜 정부의 무지몽매한 농업정책과 이에 부역한 인적 적폐를 말끔히 청산하고, 올 가을 쌀 대란을 막을 실질적이며 근원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쌀 문제 해결의 단초를 풀어가는 길에 농업농민 문제 해결의 길은 자연스레 열리게 될 것이며 민족문제 또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쌀부터 통일하자'는 농민들의 기치를 허투루 대할 일이 아니다.

오늘도 들판에는 햇살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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