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지키는 방역사, 내일은 있는가?

[ 연재기획 ] 우리 축산의 대안을 찾다 - 방역체계 현장부터 돌아보라 ②
질병 종식해도 다른 업무에 과부하 … 책임만 있는 방역사, 알맞은 처우를

  • 입력 2017.06.01 22:30
  • 수정 2017.07.31 17:48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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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우리의 축산은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공연한 수식어가 아니다. 가축질병, 수급불안, 무허가축사 적법화, 기업의 축산업 진출, 수입축산물의 거센 도전 등 만만치 않은 현안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급한 불을 끄는데 매달리다보면 등 뒤에서 태풍이 불어 닥친다. 축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왔다는 규모화, 산업화가 이제 축산농가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본지는 축종별 현안을 넘어 축산 전체를 아우르는 화두를 던지려 한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축산의 미래를 걱정하는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시도다. 일대 전환점을 맞은 축산이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혜안을 통해 대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1. 방역체계 현장부터 돌아보라

① AI발생 반년, 사지로 몰린 오리농가

② 현장 지키는 방역사, 내일은 있는가?

③ 모르기에 확산되는 공포부터 막아라

④ 축산방역, 근본부터 뜯어 고치자
 

소 결핵 및 브루셀라 검사를 위해 채취한 혈액을 시험관에 옮겨담고 농장정보를 적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

전쟁 같았던 가축질병, 구제역과 AI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텅 비어버린 농가와 막막한 마음뿐인 농민, 그리고 질병을 차단하기 위해 불철주야 현장을 누볐던 방역사만이 남았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본부장 임경종) 충남도본부 동부사무소 방역사들은 올 초 전국을 휩쓴 AI로 세종시에서만 산란계 닭의 90%를 매몰했다. 가축질병이 발생하면 각 지역의 방역사들은 초동방역을 위해 현장에 투입된다. 한 번 투입되면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열흘까지 현장을 지켜야하는데, 의식주 해결에 가장 큰 애로를 겪는다. 특히, 가축질병은 추운 날 발생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잠을 자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한다.

오상민 충남도본부 동부사무소 계장은 “초동 장비에 텐트와 온수매트가 구비돼있긴 하지만 전문산악인이 아니라 텐트에서 며칠씩 자는 건 상당히 위험하다. 보통은 차에서 히터를 켜놓고 자기 마련인데, 잠을 설치니 낮에도 몽롱한 상태로 일하기 일쑤”라며 “겨울이라 씻기도 어려워 일주일씩 머리도 못 감고, 즉석밥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도 2명이 한 조를 이뤄 현장에 투입되면 다행이고, 질병이 산발적으로 발생하면 혼자서 현장을 수습해야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다른 도본부에 인력을 요청해도 지원받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해당 지자체에서 질병이 옮길 것을 우려해 방역사 지원이 원활치 못하다.

날이 따뜻해지고 모두를 괴롭혔던 바이러스는 잠잠해졌지만, 현장에서 돌아온 방역사들의 눈앞엔 그간 손대지 못했던 업무들이 쌓여있다. 요즘엔 6대사업 시료채취와 농장정보 현행화, 무허가축사 점검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료채취는 채혈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축과의 힘싸움을 버텨야 한다. 어떤 때는 달려드는 소나 돼지에게서 살기를 느끼기도 한다고.

오상민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충남도본부 동부사무소 계장이 시료채취를 마치고 농가를 떠나기 전 타고온 차량을 소독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방역사들은 예전에 비해 농장주들의 방역의식이 많이 고취됐다고 입을 모았다. 시료채취나 예찰을 위해 농장에 방문하는 자체를 꺼리는 농장주도 줄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나로 인해 피해가 생기지 않아야한다’는 방향으로 전환되면서 방역 활동이 원활해지고 있다는 것. 그러면서도 질병예방을 위한 농장주들의 더욱 적극적인 협조를 바라기도 했다.

해내는 업무가 상당하지만 오 계장은 2006년 7월에 입사해 지난해 7월 처음으로 승진했다. 입사 10년 만이다. 오 계장의 경우가 빠르게 승진한 사례고 1999년에 입사해 아직까지 승진을 하지 못한 방역사들도 부지기수라고 했다. 강도 높은 업무를 해내는 방역사를 지치게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아닐까.

오상민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충남도본부 동부사무소 계장이 양돈농가에서 채혈을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오 계장은 “근속승진 시스템이 없으니 위계질서도 애매하다. 중앙본부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알지만 빨리 해결됐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안승주 방역본부 기획예산부 계장은 “방역본부를 있게 한 건 현장의 방역사들이다. 현장방역이 중요한 만큼 방역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방역이 이뤄질 수 있다”고 공감했다.

박해진 방역본부 노조위원장은 진급 기회가 적어 하위직에 머무르는 직원이 많은 점에 “직원들의 애사심도 고취하기 어렵다. 전반적인 체계를 바로잡아야한다”며 중앙본부의 노력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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