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발생 반년, 사지로 몰린 오리농가

[ 연재기획 ] 우리 축산의 대안을 찾다 - 방역체계 현장부터 돌아보라 ①
이동제한 해제됐지만 ‘양성’ 나온 농장은 아직도 텅텅
앞에선 정부가 규제로 묶고 뒤에선 계열화회사가 사육 재촉

  • 입력 2017.05.28 10:30
  • 수정 2017.07.31 17:46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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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우리의 축산은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공연한 수식어가 아니다. 가축질병, 수급불안, 무허가축사 적법화, 기업의 축산업 진출, 수입축산물의 거센 도전 등 만만치 않은 현안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급한 불을 끄는데 매달리다보면 등 뒤에서 태풍이 불어 닥친다. 축산업의 발전을 이끌어왔다는 규모화, 산업화가 이제 축산농가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본지는 축종별 현안을 넘어 축산 전체를 아우르는 화두를 던지려 한다.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축산의 미래를 걱정하는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시도다. 일대 전환점을 맞은 축산이 10년, 20년 뒤를 내다보는 혜안을 통해 대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1. 방역체계 현장부터 돌아보라
① AI발생 반년, 사지로 몰린 오리농가
② 현장 지키는 방역사, 내일은 있는가?
③ 모르기에 확산되는 공포부터 막아라
④ 축산방역, 근본부터 뜯어 고치자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소독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하는데 수천만원을 들였지만 (바이러스 차단이)안되는 걸 어떻게 하나.”

정기헌 한국오리협회 충북도지회장이 빈 농장에서 소독 세척기를 돌려본다. 허망히 뿌려지는 소독액이 마른 땅을 무심히 적셨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은 대표적인 오리농가 밀집지역이다. 그래서 AI가 발생하면 가장 주목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바이러스 전염의 위력을 잘 아는 농가들이기에 소독시설 보강은 물론 9월부터 왕래도 끊고 대비했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의 한 오리농장에 출입통제 표지판이 걸려있다. 이 농장은 지난해 11월 AI 양성반응이 나와 사육 중인 오리를 살처분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16일 맹동면 오리농장에서 AI 의심축 신고 이후 불과 며칠 새 의심축 신고가 쏟아지다시피 했다. 정 지회장의 농장 2곳은 19일과 22일에 각각 AI 양성 확진판정을 받고 오리를 살처분했다. 정 지회장은 그 뒤 6개월여 동안 오리를 구경도 못하고 있다.

맹동면은 3월 이동제한이 풀렸다. 그러나 양성 농장들은 까다로운 검사를 마쳐야 오리를 입식할 수 있다.

정 지회장은 “오리는 축사 바닥의 습기를 막도록 왕겨를 계속 깔아야 한다. 문제는 아무리 청소를 해도 계속 왕겨가 흙바닥에서 나오니 검사를 통과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오리는 특성상 육계농장처럼 콘크리트로 바닥을 만들 수 없다는 게 정 지회장의 설명이다.

AI 양성 농장은 청소와 전실, 소독시설 정비 등 사육환경검사를 마치면 시료를 채취해 배양접종 시험을 거친다. 결과가 음성이면 3주 동안 축사에서 시험닭을 사육한다. 시험닭 혈청검사도 통과하면 그제야 입식을 승인한다.

정 지회장은 “맹동지역 양성농장들은 아무리 빨라도 7월에야 오리를 받게 될 것이다. 7월 1일에 오리를 입식해도 45일이 지나면 8월 15일에 출하한다. 그러면 사육비는 9월에나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류근중 오리협회 음성군지회장의 맹동지역 오리농장 역시 지난해 11월 26일 양성판정을 받았다. 류 지회장은 “출하당일 간이 키트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살처분보상금 대부분이 오리값, 사료값으로 나가고 전기세, 생활비 부담에 빚만 늘었다”고 털어놨다.

류 지회장은 올해 오리사육을 사실상 포기했다. 사육환경검사도 준비하지 않고 있다. 그는 “8월이 계약만기인데 계약기간에 한 번도 납품을 하지 않았으니 재계약이 될지 모르겠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입식검사 자체가 계절적 요인을 고려하면 지금처럼 까다롭게 하지 않아도 된다. 이건 검사를 핑계로 한 농가탄압이다”라고 탄식했다.

맹동지역 오리농가들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 큰 걱정은 다가오는 겨울이다.

한 농가는 “이번엔 발생하자마자 발생농장 3㎞ 이내는 예방적 살처분을 하자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농가들 사이에선 양성농장은 보상금이 감액되니 양성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 게 아니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겨울에 오리를 키우고 싶지 않지만 농가 뜻대로 할 수 없다. 회사에서 억지로라도 입식하면 막을 수 없으니 무섭다. 우리는 양성이 뜨면 보상금이 감액되지만 회사는 오리와 사료값을 100% 다 받는다”고 덧붙였다.

사육을 하려해도 종오리가 대량 살처분되며 오리 병아리 가격이 치솟아 고민거리다. 영세업체와 자영농은 버틸 재간이 없다. AI 발생 전부터 사육비를 연체해 온 중소 계열화업체들이 휘청거리는 점도 문제다.

수직계열화 사업방식은 농민에게 결정권이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농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계열화회사에 책임을 물어도 업체가 다시 농가에 책임을 물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계열화회사에도 AI발생의 책임을 묻겠다는 식의 대책은 현장에서 냉소에 가까운 반응만 나오고 있다. 앞에선 정부가 오리 사육에 갖은 규제로 묶고 뒤에선 계열화회사가 농장에 오리부터 들이밀어 사육을 재촉하는 맹점부터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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