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보도] 상장예외제도, 고착화된 경매제의 대안

경쟁요인 없이 정체된 경매제도 … 상장예외 확대로 경쟁촉진 노려
비용절감 강점·가격투명성 약점, 가락시장서 피 튀는 공방 연속

  • 입력 2017.05.26 15:48
  • 수정 2017.05.26 15:5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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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도매시장에 출하한 농산물은 원칙적으로 경매를 거쳐야 한다. 도매법인이 농산물을 수집해 상장하면 중도매인이 이를 구입해 분산시키는 구조로, 도매법인(수집)과 중도매인(분산)의 역할이 농안법상 엄연히 구분돼 있다.

하지만 농산물 가운데는 경매제가 적합하지 않아 유통에 차질을 빚거나 기록상장(위장경매) 등의 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법 시행규칙은 도매법인의 고유기능인 수집기능을 일부 품목에 한해 중도매인에게도 허용하고 있다. 즉, 중도매인이 산지로부터 직접 물건을 받아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상장예외품목’ 혹은 ‘비상장품목’이며, 최근엔 ‘중도매인직접거래품목’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상장예외품목으로 지정되려면 △연간 반입물량 누적비율이 하위 3% 미만의 소량이거나 △해당 품목을 취급하는 중도매인이 소수이거나 △그 밖에 상장거래가 현저히 곤란하다고 개설자가 인정해야 한다. 상장예외품목은 이 조건을 기준으로 도매시장마다 달리 지정하고 있다. 가락시장의 상장예외품목 수가 115개에 달하는 반면, 단 한 품목도 상장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시장도 있는 것이다.

도매법인의 상장거래 업무는 이렇다 할 경쟁요인이 없어 정체돼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서울시는 상장예외품목 확대로 가락시장 내의 경쟁체제를 강화하려는 기조를 갖고 있다. 사진은 경매가 진행중인 가락시장 모습이다. 한승호 기자

상장예외거래는 경매거래의 허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본연의 장점 외에도 중요한 장점을 하나 더 갖고 있다. 유통단계 축소로 인한 비용 절감이다. 경매거래의 경우 도매법인 위탁수수료에 시장 내 이송비, 중도매인 이윤을 따지면 시장 내 유통비용이 거래액의 10%를 훌쩍넘는다. 반면 상장예외거래는 중도매인 위탁수수료 7%만으로 비용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상장예외거래의 단점은 투명하지 못한 가격결정이다. 시장개설자가 중도매인의 거래내역 신고를 받아 실시간 가격정보를 공개하고 있지만, 신고가격 자체가 중도매인의 임의로 이뤄지는데다 신고날짜가 실제 거래날짜보다 며칠씩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상장예외거래의 유통비용 절감 효과는 ‘중도매인의 양심적 영업’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어야만 가능하다.

출하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상장예외 확대가 나쁠 것은 없다. 도매시장 출하 시 도매법인 외에 중도매인이라는 또 하나의 창구를 이용하면서 ‘출하선택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최근엔 경매거래와 상장예외거래를 불문하고 다양한 유통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만큼 출하자가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상장예외거래 가격불투명성으로 인한 문제 또한 상당부분 해소 가능하다.

중도매인들은 상장예외품목에 한해 산지에서 직접 농산물을 수집할 수 있다. 사진은 가락시장 중도매인 점포.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출하자가 출하선택권을 갖는다는 말은 달리말해 도매법인과 중도매인 간, 또 중도매인과 중도매인 간에 수집 경쟁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의무상장제와 사실상의 독과점 체제하에서 도매법인들은 매우 안정적인 고수익을 누리고 있다. 가락시장 도매법인들의 경우 매년 수십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수수료 인하나 출하장려금 인상 등 산지 환원엔 인색하다. 오히려 출하자에게 하역비를 전가하거나 특정단체에 거액의 기부금을 지급하며 시장 내외의 손가락질을 받는 실정이다. 필요 이상의 독과점이 보장되고 그로 인한 폐해가 드러나는 가운데 상장예외 확대로 도매시장 내 경쟁요인이 늘어난다면 그 혜택은 자연히 출하자에게 돌아간다.

가락시장 개설자인 서울시(시장 박원순)는 상장예외제도의 이같은 경쟁 촉진 기능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상장예외품목 지정조건 중 세번째인 ‘상장거래가 현저히 곤란하다고 개설자가 인정하는 품목’을 폭넓게 해석·적용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가락시장에선 상장예외품목을 ‘늘리려는’ 중도매인과 ‘막으려는’ 도매법인 간에 분기 단위의 격렬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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