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잡이 - ④] 고래는 이렇게 잡는다

  • 입력 2017.05.26 15:29
  • 수정 2017.05.26 15:30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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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고래 발견! 기관실, 속도 줄이고…저쪽으로 조심조심 접근해!”

갑판장이 배의 속도와 방향을 지시하면서, 물속으로 자맥질한 고래가 어디서 솟구쳐 나올 것인가를 가늠하여 배를 몬다. 이 순간 가장 긴장하는 사람은 물론 작살을 쏘아 날릴 포수다. 고래잡이 포(砲)의 경우 구경이 50밀리, 70밀리, 90밀리, 100밀리 등 네 종류가 있었는데, 장생포 고래잡이 어부 김해진이 1960년대에 사용하던 것은 70밀리 포였다. 작살이 부착된 화살부분의 무게만 3킬로그램이 넘는데다, 수십 미터나 되는 로프를 끌고 발사되기 때문에, 제아무리 화력이 좋다 해도 50미터 이상은 날아갈 수가 없었다.

“고래가 다시 나왔다! 김 포수, 이번엔 잘 쏴봐!”

“야, 명중이다!”

작살포가 날아가 고래의 몸에 박힌다. 만세소리가 진동한다. 하지만 ‘명중’이란 말은 아무 때나 쓰는 말이 아니다. 급소를 맞혀야 명중이다. 고래가 물위로 솟구쳐서 평형을 이뤘다가 머리 부분이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바로 그 때 가슴지느러미 부근을 조준하여 맞히면 그것이 모름지기 명중이다.

“참고래다! 로프를 풀어 줘!”

장수경(長鬚鯨. 긴수염고래)이라고도 불리는 이 참고래는 길이가 20여 미터에 이르고 무게가 50톤이 넘는 대형고래다. 작살을 맞은 그놈을 억지로 끌어당기려고 했다가 요동을 치는 날이면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그 무렵 일본 포경선의 경우 작살에 연결된 로프 자체가 스프링으로 돼 있어서 고래가 이리저리 요동치는 대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했지만, 우리는 그냥 단순한 포승줄이었다. 그러니 다른 요령이 필요했다.

“로프 다 풀었으면 고래가 도망치는 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려!”

작살을 맞은 고래가 요동치면서 내달리면, 로프를 잔뜩 풀어 주고 나서, 포경선도 고래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달린다. 그러면 U자 모양의 로프를 고래와 포경선이 나란히 끌고서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형국이 된다. 한참을 달리다 보면 고래의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작살을 맞은 데다 물살이 실린 로프를 끌고 도망치자니 지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제 힘이 빠진 것 같은데 재방을 쏘자!”

다가가서 한 방을 더 쏜다. 확인사살을 마쳤으니 이제 곧 숨이 끊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 상황이 끝난 게 아니다. 대형 철선이라면 제아무리 큰 고래라도 배 위로 끌어올려서 싣고 갈 수 있겠지만, 목선의 경우는 고래를 실을 수 없기 때문에 뱃전에 매단 채로 끌고 가야만 한다. 그런데, 숨이 끊어진 그 대형 고래가 가라앉아버린다면 사태가 심각해진다.

“창 갖고 와! 기관실에 호스 연결하고!”

끝에 호스가 달린 창을 고래 몸통에 찔러 넣고 기관실에서 발동기로 공기를 주입한다. 이윽고 깊숙이 잠겨있던 거대한 고래의 몸뚱이가 수면위로 떠오른다. 뱃전에 고래를 잡아 묶는다.

뱃전에 묶인 부분은 고래의 꼬리 부위다. 그러니까 고래는 포경선 옆구리에 매달린 채 거꾸로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포경선의 선원들에게는 거대한 고래를 배 옆에 묶어 차고 항구로 돌아가는 그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기온이 아주 높은 한 여름인데다 고래를 잡은 곳이 항구로부터 지나치게 멀리 떨어진 해역이라면, 마냥 여유롭고 행복해할 처지가 못 된다. 항구까지 돌아가는 동안에 부패가 진행되어서, 애써 잡은 고래를 바다에 내버리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목선으로 고래를 잡던 1960년대에는, 동해바다 여기저기에 썩은 고래의 살덩이들이 떠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고 왕년의 포경선원들은 회고한다.

“못 해도 50톤은 더 나가겠는데.”

“아이고, 모처럼 목돈 좀 쥐어 볼라는갑다.”

“자, 선실에 들어가서 나이롱뽕이나 한 판 치자카이.”

장생포로 향하는 포경선의 기계소리가 씩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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