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제3차 부부대전

  • 입력 2017.05.26 15:26
  • 수정 2017.06.08 17:24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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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구점숙(경남 남해)]

본격적인 농사철입니다. 1년 내내 아니 바쁜 날이 없다 해도 지금처럼 바쁜 때는 가을철 말고는 없을 듯 싶습니다. 과수농가들은 열매 솎고 과수원 풀 베느라, 축사농가들은 사료작물 수확하고 모내기 준비하느라, 나락농사야 말할 것도 없지요.

마늘농사가 주작인 우리 집도 정신없이 바쁩니다. 새벽부터 종종거리며 마늘을 빼고 들이는 작업과 동시에 나락농사도 해야 하고 밭작물도 틈틈이 돌봐야하니 그야말로 여우가 애를 업고가도 모르는 철이지요. 다들 고생이 많으십니다.

남편은 타고난, 계보가 있는 느림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집은 다른 집보다 일찍 서둘러서 시작하거나 끝낸 적이 없습니다. 남편의 계산에는 남보다 일찍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전혀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 태평남편이 아주 가끔 버럭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일이 고되고 할 일이 겹치면 넉넉하던 마음의 여유가 상실되나 봅니다. 누구라도 그렇듯이 말입니다.

사람들은 모농사가 반농사라며 모농사의 중요성에 대해 늘 강조합니다. 그러니 남편은 씨나락을 준비하면서부터 마음의 긴장감이 생기는 듯 했습니다. 그런 남편의 긴장감과는 상관없이 날씨 탓인지 종자 탓인지는 몰라도 올 해는 씨나락 발아가 잘 안 됐습니다.

모판을 엎으며 두 번이나 씨나락을 넣었고 그래도 고루 나지 않는 품종이 있으니 모농사로만 치면 설농인 셈입니다. 그 과정에 세 번이나 연이어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이 부부싸움이 되었고, 두 번째는 분무기 꼭지가 없어졌다고, 세 번째는 씨나락 넣을 준비를 제대로 안 한다고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나는 감정까지야 모르는 바 아니어도 굳이 사람에게 화를 표현해야 하는 습관, 그것도 평소에 쉽게 여기는 사람에게 표현하는 것을 고치지 않으면 불편한 쪽은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당하는 사람 쪽이지요. 버럭 화를 내는 남편의 습관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았던 터라 완고하게 주장을 했습니다. 남편은 연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나의 완고함도 한 몫 했겠지만, 상대방이 마음의 준비가 없을 때 느닷없이 화를 내면 상처를 많이 받게 된다는 것까지는 인식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 정도면 많이 바뀌기는 한 것이지요? 그러니 예전보다 싸우는 횟수도 줄고, 싸운 후 성찰하는 과정도 제대로 밟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서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서 영혼을 울리는 한 마디, “내 습관도 이렇게 고치기가 어려운데 이해관계가 맞물린 세상이 어찌 빨리 바뀌겠나?”라고 합니다. 자신의 화내는 습관에도 기득권, 즉 아내에게 함부로 화내도 된다라고 하는 것도 기득권 속에서의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적어도 개연성 없이 아내들이 남편에게 버럭 화를 내는 경우가 농촌에는 그닥 흔하지는 않으니까요. 이제 절반의 승리는 거둔 셈이니 숫제 팔짱을 끼고서 부글부글 화가 나게 부추기며 진짜 바뀌었는지 검증을 한 번 해볼까요, 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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