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가 끼면 가격이 오른다

농민들 “업자들만 이익 보는 구조”
가격 올려 받기에 부정 수령까지 … 총체적 난국

  • 입력 2017.05.26 15:08
  • 수정 2017.05.26 15:09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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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은 간접 지원이 되는 보조 사업을 두고 “업자들 좋은 일만 시킨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한 시설하우스 업체가 하우스 뼈대를 설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보조 사업이 들어갔다 하면 무조건 가격이 올라간다’. 정부와 지자체가 실시하는 각종 농가 보조 사업에 관해 의견을 구한 이들에게서 이구동성으로 돌아오는 답변이다. 시설·비료·농자재·농기계 등 대부분의 구매 지원 보조 사업은 농민이 아닌 업자들의 이익이 우선되고 있다고 토로한다.

 

보조금만큼 단가 올라

일례로 농가의 선호도가 높아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가 오랜 기간 실시하고 있는 농업용 저온저장고 설치 지원 사업의 경우, 지자체별로 편차가 있지만 소형인 3평(9.9㎡) 규모 저장고에 최저 600만원~최고 750만원이 구매 비용으로 책정된다. 그러나 저온저장고를 구매하는 농민들은 이 사업비용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조 사업으로 저장고를 구매하는 경우 자부담 비용으로 50%인 300만~375만원을 내는데, 과거엔 현재 자부담비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서 자력으로 같은 크기의 저장고를 충분히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조금을 받지 않고 저온저장고를 지었다는 사례를 살펴보면 ‘뻥튀기’ 된 비용은 말 그대로 두배에 가깝다. 논산 노성면으로 귀농해 2015년부터 딸기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지난해 냉동 창고와 저온저장고의 필요성을 느껴 구매를 알아보던 중 놀라운 사실을 접한다. 시에서 내건 총사업비(자부담율 50%)의 절반도 안 되는 비용으로 원하는 저장고를 지어준다는 업자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가 원하는 3평 규모의 냉동·저온저장고는 국비 보조 사업을 통해 지을 경우 자부담비 500만원을 포함해 1,000만원의 비용을 요구했다. 그런데 독자적으로 업자를 알아본 결과 보조를 받지 않고도 450만원에 같은 저장고를 지을 수 있었다.

A씨의 경우 아무 것도 모른 채 보조 사업에 일희일비하는 여타 귀농인들과 다르게 의구심을 갖고 이 문제에 접근한 사례다. 그는 “저렴하게 내가 원하는 저장고를 지을 수 있다는 업자를 찾아내 담판을 지었다. 현찰로 즉시 지급하고 전원 연결을 내가 하는 조건으로 보조를 받아 짓는 것보다도 오히려 내 돈 50만원을 아낄 수 있었다”며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현실”이라고 전했다.

 

올라버린 시세 부담은 농민의 몫

더욱 큰 문제는 보조 사업으로 인해 배 가까이 뛰어버린 시장의 단가다. 모든 사람이 보조 사업의 혜택을 받을 수 없고 앞서 소개한 A씨 같이 소위 ‘눈치’가 빠를 수도 없기에 이는 고스란히 대부분의 농민이 떠안아야 하는 부담으로 남는다.

홍천 남면에서 유기 농사를 지으며 영농조합법인을 운영하는 이계형(53)씨는 “한마디로 업자들만 좋아지는 상황이 생긴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이런 보조 사업이 횡행하기 전에는 비닐하우스 지을 때 지금 비용의 50~60%면 자기 돈으로도 다 지었다”며 “근데 지금은 시세가 보조 사업비 적용 단가에 근접하다보니 보조 없이 혼자서 짓는다고 하면 그 큰 금액을 거의 다 줘야하는 경우를 피할 수 없다. 업자들 단가만 올려준 꼴”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보조 사업을 받아야 그나마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상황이 됐지만 사업 대상 선정에 대해서도 정말 필요한 사람이 혜택을 받기 어려운 구조라고 이씨는 말한다. 그는 “당연히 농사를 오래 지어 온 사람들이 먼저 받아야하는 것 아니냐”며 “(농업기술센터)교육 점수 이런 항목이 평가에 들어가 있는데, 우리 같이 농사만 짓는 진짜배기 농민들은 바빠서 참석도 어렵다. 공정하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월례 행사가 된 부정수령

금액이 커지다 보니 보조금을 부정 수령하는 사례는 하루가 멀다하고 관행처럼 일어나고 있다. 가장 흔한 행태는 농민이 ‘자부담을 내주겠다’는 업자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아예 결탁하고 보조금을 부정 수령하는 것이다. 이 경우 서류 상 견적을 부풀린 뒤 자부담금을 내지 않고 보조금만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주된 수법이다.

지난 18일 안동에서는 서류를 위조해 보조금만으로 조경공사를 벌여 총 2억4,000만원의 보조금을 부정 수령한 축산업자 10명과 조경업자 5명이 적발돼 불구속 입건됐다. 지난 2015년 안동시의 친환경축사 시범농가 육성사업에 참여한 이들은 자부담금의 10%를 떼어주는 대가로 업자가 위조한 서류를 통해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축산업의 경우 기업농과 준전업농·전업농의 보조금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이용해 규모를 허위로 축소 보고해 보조금을 타내기도 한다. 지난 4월 19일 예산군에서는 시설 규모를 속여 축사시설 현대화사업 보조금을 타낸 축산업자 3명과 이들을 도운 면사무소 공무원 4명이 형사입건 됐다.

사업비를 내주는 국가의 관리·감독이 절실하지만 매해 쏟아지는 보조 사업에 지자체는 관리할 인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한 시군관계자는 “각종 사업 추진만으로도 바쁜데 모든 대상자를 현장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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