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해충‘특수’보호복을 입었건만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귓가에 맴돌던 ‘앵앵’ 거리는 소리가 데시벨을 높여 ‘웅웅’ 울리기 시작하자 이미 경직된 몸에선 바짝 식은땀마저 난다. 지난 16일 전북 고창군 공음면 건동리의 한 야산, 꽃 피는 봄이 한풀 꺾일 무렵 올해 첫 아카시아 꿀 수확을 시작한 주영승(79)씨를 따라 나선 길이 시작부터 험하다.
솔가지를 태운 훈연기를 뿌리며 벌통 뚜껑을 열고 부직포로 된 보온덮개를 젖히자 소비(벌통에 들어있는 나무틀로 벌들이 벌집을 짓는다) 여러 개가 눈에 띈다. 주씨가 이 중 하나를 꺼내 들자 소비 가득 벌 수백 마리가 군집을 이뤄 무수하게 들러붙어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얌전(?)했던 벌들이 주씨가 그간 생성된 꿀을 확인하기 위해 소비를 ‘탁’ 치자 일제히 날아올라 맹렬한 기세로 주씨 및 벌통 일대를 맴돈다.
아뿔싸, 벌들의 기세는 벌통 주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멀찌감치 자리 잡고 ‘없는 사람처럼’ 불필요한 동작 없이 카메라만 매만지던 기자에게도 달려들어 ‘퉁퉁’ 부딪힌다. 그들만의 영역을 침범한 이방인에 대한 경고쯤으로 여겼건만 좀처럼 주위를 떠나지 않고 으름장을 놓더니 결국 오른손 엄지에 한 방 제대로 쏘아붙인다. 보호복에 장갑까지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욱신욱신한 오른손에 ‘이놈의 벌’ 하며 야속한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벌통을 열고 닫으며 꿀을 확인한 주씨가 소비에 들러붙어 있던 벌들을 탈봉기에 넣어 떼 내고 1톤 트럭 배터리에 연결한 채밀기에 소비를 넣어 한 번은 시계방향으로 또 한 번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빠르게 회전시키자 아래로 난 구멍으로 벌집에서 추출된 꿀이 끈적끈적한 점도를 선보이며 흘러내린다. ‘아카시아 향 가득한 달달한 맛’을 상상하며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같은데 여전히 주위를 맴도는 벌들로 인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다.
40여년 가까이 벌꿀을 생산해온 주씨는 “봄에 벌 좀 한다는 사람들은 (아카시아가 많은) 김천이나 영천 등으로 지역을 옮겨 다니며 며칠에 한 번씩 꿀을 따기도 한다”면서도 “이젠 힘에 부쳐 (고창에서) 봄에 한두 번 꿀을 딸 정도”라고 말했다. 많을 땐 200여 통 가까이 벌을 쳤지만 이마저도 절반가량 줄였다. 아카시아 시절이 끝나면 밤 꿀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지만 고창엔 밤나무가 많지 않아 봄철 아카시아 꿀이 주 소득원이다.
때로는 벌통을 임대해 수익을 내기도 한다. 열매를 맺기 위해 수정을 해야 하는 과수농가가 주 고객이다. 전날도 하우스수박 농가로 약 10여개의 벌통이 나갔다. 일주일에서 열흘 가량의 임대료는 한 통에 5만원. 그러나 임대해 준 벌은 수정 과정에서 하우스 비닐 등에 부딪혀 죽기가 다반사다. 결국 ‘빈 통’으로 돌려받은 벌통에 벌을 다시 치는 건 고스란히 농가의 몫이다.
무수히 많은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진 봄날, 수만 마리의 벌들이 오롯이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들어낸 벌꿀 뒤에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양봉 농가의 땀과 고통, 노동이 깃들여 있다. 그러니 꽃향 가득한 봄날의 달달한 꿀을 맛볼 땐 꿀맛에 배인 쓰디쓴 노동의 맛도 헤아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