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생명을 일구는 사람들의 완강함이란

  • 입력 2017.05.21 18:46
  • 수정 2017.05.24 13:48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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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구점숙(경남 남해)]

10년도 전의 이야기입니다. 한-칠레 FTA 협상 체결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가 극에 다다를즈음이었지요. 안 그래도 정부의 농업정책에 불만에 컸던 농민들은 FTA를 막기 위해 이 투쟁 저 투쟁 별별 투쟁을 다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정치권을 압박하기 위한 다소 기발한(?) 투쟁을 생각해냈습니다. FTA를 찬성하는 국회의원 조상들의 묘를 파버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실제 훼손시킨 사례는 없었고, 다만 조상을 섬기는 우리의 전통문화에 기초해서 정치적 불명예를 안기겠다는 것이었겠지요. 남의 조상묘를 어찌어찌 알아서 찾더라도 쉽사리 그 통념의 경계를 넘어서기는 어려웠던 것이었습니다. 누구라도 말입니다.

어느 지역이었던가요? 농민들이 괭이와 삽을 들쳐 메고 모 국회의원의 묘를 찾아갔더랍니다. 이 소식을 들은 묘지기 부부가 경사진 긴 언덕을 끝까지 따라와 막더랍니다. 그 때만 해도 비교적 젊은 농민회원들이 분기탱천하여 무리를 지어서는 겁박을 주기도 하고 사안의 중차대함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며 설치니까 힘의 관계상 남자분은 어쩔 수 없이 돌아서는데, 여자분이 끝끝내 막아 나서더랍니다.

원래도 겁만 주고 돌아서는 게 각본인데 여자분이 워낙 강하게 막아 나서는 바람에 여자분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돌아서는 모양새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FTA만 가지고 보자면 참 안타깝지만 그 여자분의 완강함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회자하곤 합니다.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언제인가 인도네시아의 농민들과 간담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큰 부담 없이 이런저런 농업상황을 서로 나누는 자리였지요. 역시나 나라와 조건이 다름에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슬쩍 웃으며 투쟁단의 앞쪽에 여성들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경찰들이 여성농민들에게는 덜 폭력적이기도 하고 또 여성농민들이 완강하게 싸운다는 것입니다. 웃음기를 머금고 말했던 것은 아마도 일말의 미안함이나 정당하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었겠지요. 응당 힘센 남성이 앞에 서서 더 가열 차게 싸울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자 여성농민 한 분이 자신의 팔을 보여주며 경찰과 싸우다가 부러졌었다고 말을 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잠시 틈을 내서 마늘장아찌와 열무김치를 담가서는 성주를 다녀왔습니다. 조용하다 못해 심심하기조차 하던 농촌마을이 사드 부지 선정으로 쑥대밭으로 변해있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과 정담을 나누는 곳, 농사일조차 어려운 어르신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 마을 대소사가 이뤄지는 마을회관은 그야말로 야전사령부가 되어있었습니다.

경찰버스들은 24시간 시동을 끄지 않고 매연과 엔진소리를 뿜어댔습니다. 여기가 아니라 어디라도 외부의 힘에 의해 마을주민들의 의향과 상관없이 몇 백년 넘게 이어져오던 마을의 질서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구나 싶어 참담했습니다.

더군다나 부녀회장님은 경찰들의 폭력에 이빨이 부러져서는 마스크를 쓰고 계셨습니다. 한반중에 도둑처럼 무기를 들여놓던 군을 지키던 경찰들이 마을주민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았던 것입니다. 마을이 무너지는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는 농민들이 저항하지 않을 수 있던가요? 필시 그 싸움은 중과부적이었을 것입니다.

경찰들의 숫자가 몇십배는 더 많았을 것이고 분위기는 매우 살벌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나섰던 힘, 지키고자 하는 것 앞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완강함이야말로 생명의 힘이었던 것이겠지요. 권리를 지키는데 남녀노소가 따로 있겠냐만 생명을 일구는 사람들은 확실히 더 완강한 것은 틀림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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