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고래잡이 - ③] 쉽게 잡히면 고래가 아니지

  • 입력 2017.05.21 18:44
  • 수정 2017.05.21 18:4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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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고기잡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래잡이 선원들을 부르는 호칭이 따로 있었다. ‘네꾸따이 맨 어부’가 그것이다. 물때에 맞춰서 그물을 넣었다 빼고, 비린내 맡아가면서 이런저런 잡다한 뒤처리를 해야 하는 여느 어부들과는 어로의 격(格)이 다르다 하여 붙은 별칭이다. 포경선원들은 먼 바다로 배를 몰고 나가서, 고래 한 마리만 딱 잡았다 하면 노다지를 할 수 있었다.

이런 매력 때문에 해방 이후에 돈깨나 있다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자금을 대어서 포경회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해방 직후 두 척 뿐이던 포경선이 1960년대 들어 21척으로 늘어났다.

자, 그러면 그 시절의 포경선을 좇아 고래잡이를 함께 떠나보자.

새벽 4시, 통행금지가 해제되기만 기다리고 있던 포경선들이 선주들의 배웅을 받으며 다투어 장생포항을 떠난다. 출항할 때에는 여러 척이 함께 떠나지만 항구로 돌아오는 시각은 제각기 다르다. 운이 좋아서 큰 놈 한 마리를 일찌감치 잡으면 하루 만에 돌아올 수도 있으나, 일이 제대로 안 풀리는 경우 일주일 혹은 열흘씩 바다를 떠돌다가 빈 배로 돌아오기도 했다.

일반 어선에서는 선장이 어로장(漁撈長)이지만, 포경선의 경우 작살 발사의 권한이 있는 포수가 어로장이 된다. 해방직전부터 고래잡이배를 타기 시작했던 김해진은 갑판원-갑판장-선장을 거쳐서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포수로 승격을 했다. 어쨌든 그들이 탄 배가 장생포항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자,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으니 올라가보더라고.”

갑판장이 1등 갑판원과 2등 갑판원을 데리고 맨 꼭대기에 설치된 망통으로 올라간다. 망통은 고래를 발견하기 위한 전망대다. 갑판장은 정면을 관찰하고 그의 좌우에 각각 갑판원 두 사람이 앉아서 서로 각도를 나누어서 바다를 관찰한다. 그렇다고 자기 몫의 방향만을 살피는 게 아니다. 고래를 처음 발견한 사람에게는(포경에 성공했을 경우) ‘발견료’라는 특별수당이 배당되기 때문에 침묵 속에서도 바다를 응시하는 그들의 눈치싸움이 치열하다.

“요놈의 고래들이 단체로 소풍을 갔나. 벌써 한 시간이 지나버렸네. 내려가더라고.”

한 시간이 지나면 그 셋이 망통을 내려오고 그 사이에 휴식을 취하고 있던 다른 갑판원들이 망통으로 올라간다. 포경선의 갑판원들에게는 눈이 재산이기 때문에 출항하기 전날 밤에 숙면을 취해두는 것이 필수 사항이다. 어떤 때에는 항구를 떠나온 지 30여 분만에 고래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서너 시간을 항해하는 중에 한 마리도 찾아내지 못하기도 한다. 물론 발견했다 해서 포획에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고래다! 저쪽이야! 기관실 엔진 전속력으로 올려!”

갑판장이 벨을 울려 기관실에 속도를 지시하면서 고래가 있는 쪽으로 배를 몰면 포수는 배의 이물에 설치돼 있는 포 쪽으로 신속히 이동한다.

고래는 한 번 수면 위로 부상해서 숨을 쉰 다음 물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가면 오륙 분이 지나야 떠오르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달아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따라서 고래가 다시 물위로 몸을 드러낼 위치를 얼마나 정확히 예측해내느냐에 갑판장의 능력이 좌우된다.

“저기다! 고래가 다시 나왔어! 기관실 속도 높여!”

추격전이 벌어진다. 그러나 고래는 점점 더 멀어진다.

“나쁜 고래야. 추적 포기한다.”

포경선 중에서도 목선은 고래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고래 중에는 배가 가까이 근접해도 신경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묵묵히 가는 놈이 있는데 그런 고래는 선원들 사이에서 ‘좋은 고래’로 통한다. 반면에 배가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기를 쓰고 도망치는 놈은 ‘나쁜 고래’다. 작살을 발사하는 포의 유효사거리가 50미터 이내이기 때문에 고래가 눈치 못 채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프리카 평원에서 맹수가, 사냥에는 관심 없는 듯 딴전을 피우는 체하다가, 삽시간에 초식동물을 덮치는 식의 사냥 법을 구사해야 한다.

“기름 값 아깝다. 엔진 꺼라. 날도 저물었으니 오늘은 이만 작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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