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새 대통령에게 여성농민이 바란다

  • 입력 2017.05.14 21:51
  • 수정 2017.05.24 13:48
  • 기자명 김정열(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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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정열(경북 상주)]

김정열(경북 상주)

어느 비 오는 날 아침이었다. 1년을 벼르다가 결국 못 하고 미뤄 두었던 일을 하기 위해 부산하게 주민등록증이며 도장을 챙겼고 같이 나서는 남편에게 “혹시 농지원부는 필요하지 않을까?”를 물었다. 그러나 농지원부까지 챙기려면 면사무소까지 가야 했으므로 우선 가 보기로 했다.

공동경영주 신청을 하기 위해 도착한 농산물품질관리원은 이미 볼 일을 보기 위해 와 있는 농민들로 붐볐다. 차례가 되어 공동경영주 신청을 하려고 왔다고 하니 “여기 이름만 써 주세요”라고 담당자가 나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동의서에 이름을 적어달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남편의 동의라니? 27년 동안 농사를 지어 온 여성농민인 내가 새로 개정된 법에 따라 공동경영주 등록을 하는데 남편의 동의가 왜 필요한가? 담당자에게 내가 물었다. “남편의 동의가 필요한가요?” 그렇단다. 참, 기가 막혔다.

여성농민을 경영주로 인정하라는 이 제도를 만들기 위해 수년간을 정부를 상대로 토론하고 논쟁하고 싸웠다. 1,000㎡이상 농작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거나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등 농업인의 기준에 맞으면 여성농민도 당연히 자신의 자발적 의사에 의해 공동경영주로 등록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 법이며 평등한 법이다. 우리 여성농민들은 그것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삼종지도를 말하는 조선시대도 아니고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만 등록이 가능한 제도라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 법인가? 농가경영체 등록을 하면서 남편은 나에게 자신이 경영주로 등록해도 되는지 묻지 않았고 정부의 어떤 서류에서도 내 동의를 묻지 않았다.

농업생산력의 64%가 여성농민들의 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통계는 들먹이지 않더라도 농촌에 가 보면 안다. 여성농민의 노동 없이 농업은 가능하지 않음을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대한민국은 여성농민을 농업생산의 주체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주체로 보고 있지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TV에서는 19대 대통령 투개표 방송을 하고 있다. 새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바란다. 여성농민을 그림자 취급하지 말라. 여성농민의 땀과 노동으로 이 땅의 먹거리가 생산되고 농촌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현실을 보라. 그리고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그것에 걸맞는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농촌·농업,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사실 지금 이 시간 당선이 확실시 되는 대통령의 지난 선거홍보물에 여성농민에 대한 공약은 한 줄도 없었다. 여러 가지 장밋빛 공약을 내세웠지만 어디에도 여성농민의 삶을 바꿀 청사진은 없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희망과 구호가 가슴에 와 닿지 않고 오히려 쓸쓸해지는 밤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여성농민들을 인정하라. 여성농민들이 농업생산에 기여하는 그 가치를 인정하라. 그리고 여성농민 그 자체의 존재로써 자랑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위와 권리를 보장하라. 그것이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고 소외와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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