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참고만 혀. 책임은 못 진게”

  • 입력 2017.05.14 11:31
  • 수정 2017.05.14 11:35
  • 기자명 방극완(전북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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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극완(전북 남원)]

방극완(전북 남원)

“내일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마을 주민들께서는 한 명도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새롭게 뽑힌 이장이 오랜만에 방송을 한다. 모내기 준비에, 밭일에 정신이 없는 마을에 대선이 다가왔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방송이다.

다른 대선 때는 무조건 누굴 찍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마을 분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좀 다르다. 별로 선거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이미 마음속에 정했거나 아니면 아직도 정하지 못한 분들이 있으신가 보다.

 

올 봄에 복숭아 면적을 좀 넓히기 위해서 묘목을 사러 경산과 옥천까지 갔었다. 복숭아 농사를 많이 짓는 나름의 멘토에게 어떤 품종을 심어야 하는지 물었지만 확실한 대답을 해주진 않는다.

“참고만 혀. 내가 책임은 못 진게.”

과수라는 것이 묘목을 한번 심으면 짧게는 15년, 길게는 20년을 내다보는 안목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눈을 갖지 못해서 도움을 청했는데 대답이 영 시원찮다. 이해는 된다. 그분 말 듣고 심었는데 재미를 못보면 또 뽑아내고 다시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더 다그치지는 않는다. 결국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특등묘는 2만원이고 1등묘는 1만5,000원, 2등묘는 1만원입니다.”

또 고민에 빠졌다. 멘토가 확실히 말한 건 “비싸더라도 좋은 놈 사와야 고생을 덜혀”였는데 200주를 사려다보니 가격이 만만찮다. “특등묘 100주랑 1등묘 100주 주세요” 결국 현실과 타협해 버렸다.

일단 품종과 묘목 수준을 선택했고 이제는 잘 심고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묘목 심을 시기가 지났는데 늦게 심었다가 결국 많이 말라죽어서, 올해 50주는 보식용으로 심고 150주를 새로 개간한 밭에 심었다.

“거름은 가을에 넣어도 되니께 일단 물만 자주 주면 괜찮을겨.”

매일같이 전화해서 귀찮게 해도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오히려 배우려고 한다고 칭찬도 해주시는 멘토가 신신당부한 이야기다.

“내일 비온다고 하니까 이번엔 안줘도 되겠지?”하고 한두번 빼먹고 비가 오긴했는데 정말 소심하게 왔음에도 ‘이 정도면 되겠지’하고 했더니 역시나 잘 자라는 녀석과 이제 잎이 나오는 녀석이 생겨버렸다. 평상시에 기본적인 관심을 가져야하는데 ‘잘 크고 있겠지’하는 막연한 믿음이, 또 내년에 뽑아내고 심을 녀석들이 슬슬 한 두 주 보이기 시작한다.

 

문재인이 당선된다는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아침에 확인해보니 당선됐다고 한다. 특등묘는 아니지만 1등묘 정도는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지난해 바쁘다는 핑계로 묘목을, 그것도 늦어서 2등묘 밖에 없는걸 어거지로 심었다가 결국 다 뽑아내고 올해 좀 나은 걸로 심어서, 지난해 심었던 녀석들은 잘 뽑아서 보식용으로 쓰려고 한쪽에 잘 심어 두었다.

기본적인 관심이 15년에서 20년 과수 농사를 좌우하듯이 따뜻할 때 치러진 이번 대선에 결과는 나왔고, 문재인을 찍었든 안 찍었든 이제 관심갖고 지켜보는게 10년후의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라는 걸 생각해본다.

“묘목은 잘크냐?”는 멘토의 전화에 “네”라고 대답하게끔 오늘도 묘목들과 눈인사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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